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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19세기에 할아버지의 연주시 필사본입니다.
• 니가 내 에빈데 2007.03.11 20:53
•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구름이 옷인듯 꽃이 얼굴인듯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봄바람 나부끼니 이슬처럼 영롱해라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군옥산 꼭대기에서 볼 수 없다면
會向瑤坮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요대의 달빛아래에서 만나리.
一枝紅艶露凝香(일지홍염노응향) 한 가지 붉고 고와 이슬에도 향기 머금었네.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운우의 즐거움은 부질없어 애간장을 녹이네.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묻노니 ! 한 궁에선 누가 이와 비슷할까.
可怜飛燕倚新粧(가령비연의신장) 사랑스런 비연도 새로이 단장해야하리.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 고운 꽃 절세미인 둘 다 즐거워하며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언제나 웃음 띠니 군왕의 사랑을 받는구나.
解惜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봄바람의 끝없는 恨을 풀어버리고
沈香亭北倚欄干(침향정북의난간) 침향정 북쪽난간에 기대어 섰구나.
淸平詞(청평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詞는 노랫말입니다. 현종은 침향 정에 기대어 서있고, 양귀비는 모란꽃을 희롱하며 노는 모습을 이구년(가수)의 곡에 맞추기 위한 노래가사입니다. 바로 이 가사 때문에 이백'에게 장안추방령이 내려지는 겁니다. 현종은 이구년에게 지금의 모습을 노래로 부르라고 명령했는데요. 이구년은 이백에게 노랫말을 지으라고 한 것이 청평사'이며, 그 전에, 고력사(환관)에게 신발을 벗기라고 술주정을 했던 것을 기억하던...고력사'가, 양귀비'를 조비연에게 비유한 것은 불경스럽다고 고자질한 게지요.
초나라 경양왕(傾襄王)이 巫山(무산)에 갔을 때, 두둥실 떠다니는 흰구름을 보고 아첨쟁이인 송옥'에게 저게 무어냐? 고 물었는데...송옥은 말하기를(무산의 아침구름입니다.)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합니다. 이런 대답을 하게 된 연유는, 경양왕의 애비가 회왕(懷王)인데요. 회왕이 하루는 꿈속에서 선녀를 만나서 거시기를 했는데...ㅋ. 선녀가 말하길,(저는 무산의 선녀이옵니다. 이후,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찾아오겠나이다.) 요러케 구라를 치는데...그만 꿈이 깨어버린 겁니다. 이 고사를 알고 있던, 송옥은 경양왕'에게 또 구라를 친 게지요. 그래서 지금도 거시기를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하는 겁니다.
조비연이 새롭게 단장을 한다/는 말은, 한나라의 성제(成帝)에게는 飛燕(비연)과 합덕(合德)이라는 후궁이 있었는데요. 둘은 자매입니다. 그런데, 비연"이 왕후가 되자, 합덕이 질투를 해서 비연은 폐서인'이 되는 겁니다. 비연'은 성제(成帝)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출 만큼, 말라깽이였는데...아시다시피 양귀비는 뚱돼지였습니다. 조비연 같은 말라깽이를 양귀비에 비유하고, 또 비연은 출신성분 때문에 성제를 유혹했다는 핸디캡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력사"가 양귀비를 조비연'에게 비유했다고 현종에게 고자질을 하는 겁니다. 초사(楚辭)에, 군옥산에는 일녀(佚女)라는 선녀가 살았고, 요대(瑤坮)에는 전설상의 선녀인, 서왕모"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이소(離騷)에는 전해집니다.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술 푸는 동안, 산에는 꽃이 피었네그랴
一盃一盃復一盃(일배일배부일배) 한잔한잔 또 한잔하세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난, 술빨올라 쉬고 싶으이 그대는 갈려면 가고...
明朝有意抱琴來(금조유의포금래) 내일아침에 琴(금)을 들고 오는 것은 잊지 말게나.
대충 정리하자면, 이백'이 43세일 때 청평사를 짓습니다. 안록산(安綠山)이 입조(入朝)하며, 이백"도 한창 잘 나갈 때입니다.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등을 지으며 주로 이구년의 노래가사를 짓던 때이니...꼴통을 부릴 법도 한 게지요. 시인이 한갖 작사가 노릇을 했으니까요. 어쨌던, 청평사"때문에 장안추방령이 내려집니다. 그 후 산동/강남을 떠돌다가, 증왕륜(贈王倫)이라는 시를 쓸 때가 54 세이며/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쓰고, 삼협(三峽)으로 들어가던 시기는 말년인 58~59 세 때입니다.35 세에, 유명한 장진주(將進酒)를 쓰고,18년이 흐른 후,53 세에 산중문답(山中問答)을 지었으니...그 동안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청평사"를 쓴 시기는 서기로 743 년/연주시를 엮은 해와 같은 癸未年(계미년)입니다.
20:53.
• 니가 내 에빈데 2007.03.13 10:01
• 일곱 번째 쪽의 맨 왼쪽 끝은, 杜甫(두보)의 시입니다.
承聞...(승문 :이어 듣기를...)으로 이어지는 아주 긴 제목의 무려 12 首나 되는 시 중에, 일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끝 부분만 한글로 바꾸면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배경은 안록산의 난이 끝나고...첫 부분을 인용하자면, 祿山作逆降天誅(녹산작역항천주 ;안록산이 반역을 했는데 하늘이 벌을 내렸다.)로 시작하는 겁니다.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말년에 후처의 소생을 편애하고 종기와 등창으로 고생하다가 본처의 아들 손에 죽는 겁니다.
안록산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이백'이 청평사"를 쓸때입니다.)
당나라 궁궐...현종 앞에, 뱃때지가 불룩한 안록산'이 들어옵니다.
현종 왈 : 허어 ! 네 놈의 뱃속에는 뭐가 들었을꼬?
안록산 왈 : 오직 폐하를 향한 충성심이 들었사옵니다.
현종 왈 : 두고 보면 알겠지...끌끌 !
안록산의 뱃속도 시꺼맸습니다...^^
(이거...전부 문헌에 기록된 내용임.)
• 니가 내 에빈데 2007.03.12 09:35
• 또 다시 잡설을 보태자면...ㅋ.한자(漢字)는 한민족이 만든 글자입니다.우리글입니다.우째서,훈민정음의 서문도 제대로 해석을 못하는지...^^
세종대왕님이, 분명하게 글로 남겨놨잖아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之文字 不相流通 故...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지문자 불상유통 고...
서문에 있는 문장, 異乎中國(이호중국)을 해석하기를...(중국과 달라)라고 해석하는데...ㅋ. 이런 개똥같은 해석이 어디메 있습니까? 아니...!! 1446 년에 중국(中國)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明나라가 지덜을 중국이라고 말했습니까? 또 만약, 백번을 양보해서...지금의 중국을 의미한다손 치더라도, 중국이라고 했겠습니까? 사대주의에 찌든 당시의 조선은, 당연히 대국(大國)상국(上國)중화(中華)라고 했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異乎大國/上國/中華(이호대국/상국/중화)라고 표현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국'이라는 말은 20 세기에, 즉 신해혁명 이후에 처음으로 손문"이 사용한 말입니다. 존재하지도 않은, 중국"을, 지금의 중국과 혼동해서 해석하면 어케 합니까?(☜ 이 말은, 똥대가리 한글학자들에게...ㅋ.) 마치, 오늘은 똥을 쌌더니...어제는
• 시원하구나 ! 라는 꼬라지들이지요.
이렇게 해석을 해야지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말은, 한자음을 그냥,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으로 옮겨 쓴 겁니다. 원뜻은, 나랏말(言語/音)이 나라안(中國)에서 서로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자를 아는 사람끼리도/서로 불상유통(不相流通)인겁니다.
(에효 ! 아예 교과서 판떼기을 갈려고 해라..ㅋ.)
그러나,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겠지요.
(훈민정음 서문을 언제 발견했고, 누가 해석을 했는지/를 따져보시길...)
09:35.
• 임광자 2007.03.12 11:53
• 저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맞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을 옛날에는 중원이라 불렀지요.
중국이 아니었어요. 중국이란 단어는 생긴 지가 얼마 안 되지요.
세종대왕님이 중국이름을 미리 지어 준 것도 아니고요.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에비님! 감사 합니다.
지난번에 이어서 올림니다. 문맥이 연결되지 않으면 이야기 하십시요.
★ 에비님! 시간 나시는 대로 풀이 좀 해 주시와요.
林光子 200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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