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4회. 입관(入棺) 이야기
장례식
장에는 도우미가 오고 음식이 속속 배달 되었다.
홍어회며
한약을 넣어 삶았다는 돼지고기 수육이며 과일과 배추김치 육개장 떡 등이 상 위에 차려지면서 도착하는 문상객들에게 대접을 해
드렸다.
홍어회는
생전에 어머님이 좋아하신 음식이고 쑥 절편도 어머님이 좋아하시고 야들야들한 고소한 콩고물에 묻힌 인절미도 맛이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맛있었다. 육개장도 아주 맛 있어서 먹어 본 문상객들이 음식 맛이 좋다고 칭찬들을 하였다. 전도 맛있고 어느 것
하나 음식에서는 어머님께 누가 되지 않게 문상객들에게 드릴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시골에서
형님들이 도와 주시겠다고 오셨는데 젊은 사람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고 치아가 빠진 노인이 된 사촌 형님들이 오셨는데 너무
가엾어 보였다. 나는 형님들이 모인 곳에 음식상을 차려 들이고 이번에는 푹 쉬시라고 하였다. 작은어머님을 생각하며
음식을 드시고 따끈한 온돌에서 지친 삭신들을 눕히고 쉬라고 하니 음식 맛이 좋다고 하셔서 여러 번 상을 차려
드렸다.
나의
아버지는 7남 1여 중에서 다섯번째 아들이어서 나 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가 많고 사촌 오빠들이 많다. 집에 큰일이
있을 적 마다, 마다 않고 몰려 와서 일을 도와 주신 형님들이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계셨다. 그 몸으로라도 돕겠다고 밤에 오신
것이다.
바닥이
찜질방처럼 뜨거워서 나는 잠도 못자고 그냥 앉은 체로 밤을 지새는데 형님들은 아주 좋단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연락하여 실내 온도를 낮추어 달라고 하니 시골 노인들이 싫어한단다. 그래서 바닥을 따끈따끈하게
한단다.
입관
시간인 4시가 되었다
우리들은
입관실로 들어가 널 속에 평화롭게 누워 계신 어머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
곳에서 목사님과 교인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는 몇 사람만 남고는 모두 쫓겨 났다. 입관실 밖에는
유리 벽이 있어서 안을 보게 되어 있었다. 널 속에 계신 어머님을 꺼내 철 침대에 반듯하게 올리고서 소독 솜으로 닦았다. 항문을 닥았다. 사람이
죽으면 항문이 벌어져 대변이 조금 나올 수도 있단다.
그런데
어머님은 항문을 닦은 약솜을 보니 깨끗하였다. 살결이 뽀얗다. 수술
할 때 담당 의사도 노인 같이 않고 살결이 좋았다고 하였다. 심장도
신장도 다른 기관들도 다 나이 보다 건강하였다고 하였다. 정말
어머니의 살결은 나이 답지 않게 좋았다.
살은
주름도 없고 탄력도 있고 쳐지지도 않았다.
생전에
어머님은 나에게
“나는
발뒤꿈치도 예쁘다”며 보여 주시곤 했다.
작은
발이 예뻤다. 그렇게 설사만 하였으니 살이 빠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얼굴이며
가슴,등을 그리고 팔과 손과 다리와 발을 소독 솜으로 닦았다.
소독
솜으로 깨끗이 닦은 후에 천으로
손과 발을 따로 싸서 묶었다.
배와
등에 천을 대고 옷을 입혔다.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서 수의를 입혔다.
그리고는
매듭을 지며 묶기 시작하였다.
얼굴을
감싸기 전에는 우리들 더러 마지막이니 잘 보라고 잠시 묶는 것을 멈추었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트 가지고 가서 적어 올걸…다 생각 날 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상복을 한복 집에 맞추어 주셨다. 서울에서 고향의 한복 집으로 상복을
전화로 맞추니 한복 집에서는 사서 입게 하라고 자기 집에서 맞추면 비싸다고 아무리 말려도 어머님은
막무가내셨단다.
장례식에서
딸들이 뽀얗고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하였단다.
그리고는
사는 것 보다 몇 배나 비싸게 아주 뽀얗고 하얀 상복을 만들게 하였고
우리들은
그걸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 입관을 하는 중에 받았다.
나는
그 때 실수를 하였다.
어머님께
마지막 옷을 입히는 과정을 상복을 입어 보느라 잠시 보지 못했다.
어머님은
꽃 버선 같은 걸 신의셨다
삼
배로 손을 다시 싸고 발도 싸고 버선을 신기었다.
사람들은
매듭을 위로 만들고 아래로 만들었다.
일곱
매듭이라고 하였으나 위로 일곱 매듭이고
아래로도
매듭을 계속 만들었다.
매듭으로
어머님은 아주 꽁꽁 묶였다.
손도
발도 싸고 몸에 매듭을 만드는 것은 살이 삭았을 적에 뼈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다시 널 속에 넣었다.
어머님은
살아 생전에 가묘 속에 석관을 만들어 놓으셔서 널에 못질을 살짝 해 두었다. 다시 열어야
하니까..
참
얼굴을 감싸기 전에 우리들에게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냥 어머님을 보면서 잘 가시라고 말하며 어머니 몸에 손을 대지 않았으나
큰
여동생은 어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지며 “엄마 왜 이렇게 차”라고
말하였다.
그
다음 여동생은 어머니 입술에 키스를 진하게 하였다. 나는
말렸다.
어머님은
차기는 했어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전혀 경직되지 않았다.
남동생과
나는 그냥 어머니를 바라만 보고서 어머니의 둘레를 돌았다..
목사님과
함께 예배를 들였다.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다시
밖으로 나가 유리 벽으로 보니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이 감싸졌다.
입관을
다 마치고 우리는 어머님이 마지막 해 주신 상복을 입고
다시
입관실에 들어가 목사님과 함께 기도와 찬송과 또 무언가를 외웠다. 왜 생각이 이렇게 안 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다시 냉동실로 들어갔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죽으면 빳빳해진다는데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처럼 부드러웠던 것 같다.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고…..어쩜 그렇게도 편안하게 보이셨는지….
내일은
마지막 회입니다.
林光子 2004년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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