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2회. 간호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어머님은 죽음을 미리 예감하셨는지 다치시기 얼마 전 부터 쓰시던 그릇을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셨다. 가지고 있는 그릇도 버린다고 하였던히
"내가 쓰던 그릇을 쓰면서 내
생각을 하거라" 하면
"나중에"
라고
대답하곤 하였든히 항아리며 살림살이 중에서 쓸만 한 것을 많이 사람들에게 주셨다. 장례를 치루고 고향집에 들려
장독대를 보니 항아리가 많이 비었다. 앞으로 나는 항아리가 많이 필요한데...
내가 고향집을 남동생에게서 샀고 서울집이 팔리면 바로 고창으로 내려갈거니 어쩧던
어머님 소원대로 나는 어머님께서 쓰시던 그릇을 물러 받아 사용하게 되었다.
점점
회복되어 가든 어머님은 아욱된장국을 드시고는 계속 설사를 하시었다.하루
밤에도 스므번을 더 설사를 하셨단다.병원에서는 가시려고 그러니 힌죽만 들게 하란다. 아욱은 찬 성질이 있어 설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금기식품이다. 그걸 동생은 모른 것이다. 맛이 있었기에 그것도 많이 드시고서 갑자기 탈이 나신
것이다.
우리네
속담에는
가을
아욱국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고 하지만 가을 아욱국은 배가 찬 사람이나 변이 무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욱을 심지 않는다. 그 대신 근대를 심는다. 아욱씨를 동규자라고 하고, 동규자차가 바로 변비치료약이다.
그걸 설사만 하는 분에게 드시게 하였으니 탈 날 수 밖에....그 후로 어머님은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시다가 흰죽에 소금을 넣어 드시니 설사가
잡혀서 길죽하고 둥근 형태가 뚜렷한 대변을 누게 되셔서 기운을 차리고 아주 좋아하셨다.
나는
동치미를 담가 잘 익어서그걸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드시게 하였든히 맛있다고
좋아 하셨다. 나는 된똥을 싸시니까 이제 괜찮을 줄 알았다.그런데
그날 저녁 다시 설사를 하시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니 무우도
찬성질이 있고 동치미 속에는 삭힌고추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매운
삭힌 고추는 자극성이 크다. 아풀싸! 왜 내가 그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후회 막급이었다. 어머님의
소화관벽은 아주 여러진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극성이 있는 것이 닿으면 설사를
하였던거다.
그
후 어머님은 식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밤에 막내 딸 잠 못자고 계속 20번 이상씩을 대변을 받아 내야
하니까.그러다가 다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어떻게 소금에 힌죽을 먹고 살아 날 수 있겠어"
"알벤굴비를
구워라"
막내동생은
그냥 드시고 싶다는 대로 모두 사다 해 드리기로 했다. 설사를 계속 하다가는 탈수현상이 일어 나 탈진되어
가신단다.
이제
생각난다.
어머님은
고혈압약을 드시고 계셨는데 설사 후에는혈압이 떨어졌을테니 혈압약을
드시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동생에게 그걸 이야기 해 주지 못했다.
어머님은 전복죽을 참 많이 드셨다. 막내동생 남편인 막내 사위가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가장 싱싱하고 좋은 것을 직접 사오면 막내동생은 전복죽을 만들어 드시게 했다. 그래서일까 많이 회복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음식을 계속 먹을 수는 없었던 거다. 자꾸 다른 것을 먹기를 원했으니.. 해산물은 속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고 속이 차면 설사를 한다.
어머님은 입이 짧아서 계속 다른 반찬을 해 드셔야 한다. 그건 나도
그렇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님은 설사를 하셨으니 장을 따듯하게 하는 음식을 드셨어야 하는데 장을 차게 하는 음식을 주로 드시게 했다.
기운이
없어지면 병원에 가서 영양주사를 맞히려고 하면 절대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버티셨다. 이제는 병원에서 또 입원하고
수술하라고 할까 보아서 싫은 것이다.
어머님도
우리들도 어머님의 설사를 잠재울 수 있는 음식을 해 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후회스럽다.
예전의
고창집에는 문간채가 있고 거기에 대문이 있었다.
그
대문은 솟을대문이었는데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났다.
늦은밤
어머니는 그 대문을 닫아 잠그고 오면
옛날
이야기 하나씩을 해 주셨다.
어머님은
시집 오기 전 많은 책을 읽으셨다.
남자들에게
사랑방이 있듯이 여자들에게도 골방이 있었다.
추운
겨울 특히 설 명절에는 동네 여자들도 골방에 모였다고 한다.
어머님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옛날 책을 읽어주셨단다.
그래서
찬송가도 옛날 이야기책을 읽는 음률로 해서 언제나 박자가 맞지 않았다.
나는
여고시절 고문(古文:옛글) 시험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옛글
책에서 모르는 것은 어머님 더러 읽어주고 해석해 달라고 하면 끝내주게 잘해 주셨다.
그래서
고문 선생님이 어떻게 옛글을 잘 아느냐고 하면 어머님이
어려서 옛글을 많이 읽으셔서 가르쳐 주셨다고 말씀 드리곤 하였다. 어머님이
어렸을 적에 외할아버지께서 독 선생을 드릴터니 주산과
암산과 한문과 언문을 배우라고 하셨는데 학교 보내 달라고 하면서 독선생님을
거절 하고 언문만 배우고는 학교 보내 달라고 배우지 않았단다. 학교
다니는 사람이 너무도 부러웠단다.
참
어머님은 암산 실력이 뛰어나서 아버지의 주산 보다 더 정확하고 빨랐다. 어머님이
어렸을 적 외갓집은 상머슴이 둘에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야말로
어머님은 손에 물한방울 안 묻치고 호미자루 한번 안 들고 책만
보다가 시집을 가셨단다.
외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어떤 사람이 와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 주겠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전주에 있는 소학교였단다. 학생수도 얼마 되지 않고 숙식을 다 제공하고 학생들은 신식공부만 하면 되었단다.
그런데 상투를 자르라는 말에 도망쳐 나왔단다. 그 이야기를 외할아버님이 나에게 하시면서 그 때 도망쳐 나오지 않았다면
아주
높은 사람이 되었을거란다.
그
때 함께 공부한 사람들 다들 아주 높은 벼슬자리에 올랏단다.
외할아버님은
그 이야기를 들려 주시면서 많이 후회하시었다.
그런분이셨으니
가장 아끼는 딸을 학교에 보내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머님을
학교에 보내시지 않으신 것도 훗날 아주 늙으셔서는 후회하셨다. 어머님을
가르쳐서 학교 선생님을 만들었으면 좋았을거라고 하시면서....
내가 전화로 어릴 적에 나에게 들려 주셨던 숙영낭자전, 별주부전, 허생전, 유충열전 심청전,춘향전 한씨전,사명당 등등을 다시 들려 달라고 하였든히 처음에는 다 잊어 버렸다고 하든히 하나씩 생각해 내시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들을 요점만 들려 주셨다.
어머님의 이야기 목소리를 녹음한다고 하였든히 동생들이 반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 때 마다 울게 될것이라고.....
다음에
계속됩니다.
林光子 2004년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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