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1회, 선풍기의 횡포
나의
어머님은 90세를 한달 남기고서 89세에 가셨다.
그
연세까지
허리
굽지 않으셨고,
틀니
하지 않고
눈이
좋으셔서 안경 없이도
우리를
비롯하여 사물을 똑똑히 보셨다.
귀가
밝으셨다.
옆에서
우리가 소근거리는 소리도 다 들으셨다.
목소리는
기운찼다.
그런데
왜 가셨을까?
그건
단 한번의 실수였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주무시다가
너무
바람이 세어서
그냥
누운 자세로 팔을 뻗쳐
손으로
선풍기를 옆으로 조금 밀려다가
돌아가는
선풍기가
어머님의
엉댕이 위에
넘어져서는
막
돌아가버린 것이다.
같이
자는 아들이 너무 곤히 자는 것 같아
차마
깨우지 못하고 그냥 혼자서 돌아가는 선풍기 머리를
옆으로
치우려고 한참을
안간힘을
쓰고써야 겨우 옆으로 치우고서
일어나려
하니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고
엉댕이는
무척 아프셨단다.
그
때서야 큰일이구나 싶어 아들을 깨우고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하더란다.
우리는
그 날도 어머님께 안부 전화 하였던히
그
지경이 되어 계셨다.
막내
여동생 내외가 즉시 내려가
엎고서
병원으로 달려가 입원을 시키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니
엉댕이
뼈가 다 부숴져 버린 상태였다.
의사왈:
그대로
두면 욕창이 생겨서 돌아가시고
인공뼈
수술을 하시면
연세가
높아서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살아
날 수도 있는데
살아
나시면
걸을
수 있단다.
나는
친구에게 어머님의 현 상태를 말하니
그
친구 하는 말:
수술을
시키지 말란다.
노인네
수술을 하면 회복이 어렵단다.
자기의
시어머님도 우리 어머님처럼
엉덩이뼈가
부러졌는데
병원에서
우리네와 똑 같은 말을 했지만
수술을
하지 않았단다.
그랬던히
20일만에
기저귀를 떼고
한달이
지나니 앉아서 걷드란다.
앉자서만
걸을 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시고서
5년을
더 살으셨단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은 넘어져서 엉덩이뼈가 부러진게 아니고
엉덩이뼈
위에서 무거운 선풍기 머리가
쿵쾅
하고 떨어져 한참을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그 힘이 얼마나 크게 미쳤겠는가....
어머님은
앉은
생활을 하면서 살지는 않겠다고 하셨고
막내동생은
그냥 수술을 시키기로 하고
수술
날짜를 받아 우리들에게 연락을 해서
나는
검은 옷을 준비해 갖고 고향으로 갔다.
어머님의
입원실에 우린 다 모였고
나는
동생들에게 노인에게는 수술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머님은
겁이 났는지 나더러
"수술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단다" 라고 말씀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그 높은 자존심을 안다.
동생들의
주장도 강해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수술
시간이 가까이 오자
목사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예배를
보았다.
그리고는
우리들은
수술할 의사에게 불러가
어머님의
엉덩이 엑스레이 사진을 앞에 놓고
부러진
뼈조각들을 보았고
앞으로
어떻게 인공뼈를 이식할 것인가를
설명들었다.
의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전신마취를
피하고 척추마취를 해야 하는데
만약에
골다공증이 심하면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럴
때는 다른 방법을 쓰겠다고 하였는데
그
방법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님의
척추 마취는 성공되었고
3시간에
걸친 수술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복도에서 두손을 모으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데 애간장을
다
녹이고 있었다.
드디어
어머님이 회복실로 옮겨지고
우리는
담당의사한테 불러가 수술된
엉덩이와
허벅지의 엑스레이 사진을 놓고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내가
잘 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노인은
대 수술을 해서는 안된다는 작은 사실 하나를..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회복실에서
어머님이 나왔는데
첫마디가"아이구 이제 내가 앉은뱅이가 안되겠다.
앉은뱅이
될 줄 알고 얼마나 속을 태웠는데..."하신다.
그
놈의 자존심이 당신의 명을 재촉한 것을 모르고서..
그리고는
춥다고 하시기에 담요를 더 덮어드리고
침대차를
밀어 입원실로 왔다.
추워하는
이유는 차가운 혈액을 수혈했기 때문이란다.
수혈도
무척 많이 하고 거의 주사로 살으셨고
약도
많이 드셨다.
그런데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는
계속
설사를 하였다.
나는
왜 설사를 하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20일이 지나서 실을 뽑고
퇴원을
해도 된다고 의사는 말한다.
식사만
잘 하시면 괜찮다고 말한다.
식사만
잘하면...
어머님은
집에서 살림을 하는 막내동생
즉
가장 젊은 딸에게 가서 간호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주시기를 꽂고 살았지만
집으로
와서는 식사로 영양보충을 하여야 했다.
병원에서부터
하던 설사는 여전해서 받아냈다.
보행기
같은 걸 잡고서 일어나서서
복도로
나가시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시어 변기에도 앉아 용변도 하셨다.
그런데
설사가 더 심해지면
기운이
없어 하였고 재활운동을 하지 않으려 하시었다.
내가
갔을 때 어머님은 가만히 나에게
"병원에서
사람들이 나이가 많으면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드라...."
"엄마
내 친구 시어머니도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그냥
퇴원시키고 집에서 간호해서 한달만에 기저귀 떼고
앉아서
돌아다녔데.."
"앉아서라도
걸어 다닌다면 얼마나 좋겟니?"
"엄마가
수술실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한 말이
앉은뱅이
안되서 다행이다 그랬어.."
"내가
언제 그랬어? 너도 수술에 나중에 동의했지 않아?"
"그래
처음에는 반대했다가..."
한참
후에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련다"
"..."
"나는
살만큼 살았다."
다음에
계속합니다.
林光子 20041116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 이야기-3회. 엄마! 수술 시켜서 죄송해요. (0) | 2006.06.26 |
---|---|
이별 이야기-2회. 간호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0) | 2006.06.25 |
혼자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하기 (0) | 2006.06.20 |
머위 대합 들깨로 만든 탕은 우리를 건강하게..... (0) | 2006.06.18 |
살구씨죽 (0) | 200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