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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세포와의 전쟁

알콜세포와의 전쟁→16. 옆방에서 통곡소리가 나서 가 보니...

by 임광자 2005. 12. 30.

한 칠팔년 전 일이다.

밤잠을 자지 못해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통곡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싶어 옆방을 가니 그가 “쏘지 마! 쏘지마! 왜 죽여! 죽이지 마!”하면서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이상해서 살펴보니 그가 보고 있는 텔레비젼에서 킬링필드를 하고 있다. 월남전 영화는 총 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보고 그렇게 총을 쏘지 말라며 울고 있었다. “저건 영화이고 실제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해도 그는 텔레비젼 앞에 두 무릎 꿇고 앉아 보면서 쏘지 말라며 통곡을 한다. 나는 텔레비젼을 꺼 버렸다. “보라고 텔레비젼에서 월남전 영화를 하고 있었어요”라고 그에게 말하니 그는 울음을 그치고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눈물을 한없이 흘린다.

 

그는 술에 취하면 떠든다. 그냥 작은 소리로 떠드는 게 아니다. 난청증이 있어서 큰소리로 떠든다. 자기 소리를 자기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떠든다. 낮에는 밖으로도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어 조금은 참겠는데 밤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옆집에서는 시끄럽다고 벽을 막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계속 떠들면 집에서 나와서 우리집 현관문을 막 두드리며 “잠 좀 잡시다” 지금이 몇 시인데 떠들어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럼 그는 조용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가 떠들 때 전축을 크게 틀어 놓았을 때 주위에서 와서 조용히 하라고 말해 주면 대단히 고마웠다. 그런 날 밤은 조용하다.

 

밤에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밤에는 그가 좋아하는 서부극이나 사극의 비디오를 빌려다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는 잘 보지 않는다. 내가 옆에서 같이 봐 주면서 그가 못 알아 듣는 대사를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한번만 보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본다. 벤허는 여러 번 보았다. 고전 영화도 많이 보았다. 하루 밤에 두 편을 빌려다가 번갈라 가며 서너 번 보다 보면 새벽이 된다. 새벽에는 술김에도 약수를 뜨러 간다고 나갈 때가 많다. 그가 약수를 뜨러 가고 나면 돌아 올 때까지 두시간에서 세시간은 잠을 잘 수가 있다.

 

만약에 산에서 누구를 데리고 오면 나는 잽싸게 내 방으로 가거나 집을 나서서 시원한 공기를 들여 마시며 멍해진 머리가 맑아지도록 쑥향을 맡을 때가 많다. 아니면 심어 놓은 채소를 본다. 겨울엔 찬바람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어쩔 땐 그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타면서 하늘의 별을 찾는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이었다. 오래도록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리고 있는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 보슬비가 오네! 집에 들어가야 겠어요?”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보슬비가 아니고 이슬이 내리는 거야! 하늘을 보아 별들이 있잖아!” 하늘을 보니 별들이 깜박거린다. 더운 낮을 지난 밤에는 이슬이 많이 내린다. 옷이 축축하도록....

 

 

지금은 비디오를 보지 않는다.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게 하는 방법이 떠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林光子 200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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