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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세포와의 전쟁

알콜세포와의 전쟁→13. IMF가 닥치자 그는 스스로 금주를...

by 임광자 2005. 12. 27.

나는 생활비를 위해서 집을 개조해서 방 3개를 월세 놓았다. 이곳은 국민 대학교와 고려 보건전문대학이 인접해 있어 작고 싼 방이 잘 나갔었다. 여학생들을 두었는데 늦은 밤 그네들과 차를 나누며 대화를 하는 시간과 모두 있을 때 다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출입문을 모두 각각 외부로 따로 내 주어서 안쪽으로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안쪽으로 통하는 문을 잠그고 그 틈새를 청색 테이프로 겹겹히 붙이고 책장을 문 앞에 놓고서 그가 술 마시고 떠드는 소리가 덜 들리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낮에는 없었다.


아이엠에프가 찾아오자 월세 방이 나가지 않았다. IMF 때 가난한 시골 학생들이 휴학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집은 가난한 학생들이 싼 맛으로 세 들어서 살던 방이어서 가난한 시골 학생들이 학교를 오지 못하자 우리집의 방도 세가 나가지 않았다. 월세가 나가지 않자 우린 아주 힘든 생활을 하였다.

 

그는 담배를 줄이고 술을 딱 끊는 것이 아닌가. 그 때의 사회 분위기는 모두가 함께 절약생활을 하게끔 만들었다. 텔레비죤에서도 근검절약을 하도록 유도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가 돌자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실상 술 생각을 안 했던 사람도 텔레비죤이나 라디오에서 술 이야기나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술을 마시곤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콜중독이 많은 것은 사회가 술 주정에 너그럽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술 대신 정신을 맑게 하는 차를 많이 마시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드라마를 보면 실제 상황 보다도 더 많은 술자리가 마련된다. 이건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토론문화가 정착 되었으면 싶다.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투명한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한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 오르고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그와 나는 반찬 값을 아끼고 운동을 할 겸 북한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고 뜯어서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그 때 처음으로 향기 짙은 보라색 칡꽃 송이를 보았고 그걸 따다가 칡꽃차를 만들었다. 칡꽃은 주독과 숙취해소, 간에도 좋다. 어린 칡 잎은 쪄서 밥을 쌈해 먹었다. 고들빼기, 돌미나리, 민들레 쑥, 질경이 등을 캐서 나물을 해 먹었다. 간에 좋다는 돌미나리 우유를 매일 마시고, 생선을 김치 보다도 더 먹었으며 지방질이 적은 고기를 먹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린 세끼 밥 먹는 것에 주로 생활비가 들어간다. 즉 엥겔지수가 무척 높은 생활이다. 운동은 가까운 산을 오르면 되고 정수기가 없어도 산을 오르면 검사를 거친 맑은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취미생활로는 그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썼다.

그는 오육개월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와 나의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IMF가 점점 풀려지자 술꾼들은 다시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가장 머리 속이 맑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윈시적인 생활이었지만 건강을 되 찾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웠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꼭 개선되어야 한다.

 

林光子 200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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