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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세포와의 전쟁

알콜세포와의 전쟁→9. 하수구에 걸린 태아(胎兒)를 보고......

by 임광자 2005. 12. 22.

내가 결혼한지 육개월째에 임신을 하자 그는 술 취한 상태에서 내 배를 발로 찼다. 나는 얼른 어머님께서 우리 밭에서 심어 만든 목화솜을 넣고 만든 옛날식의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 큰 이불은 아주 두꺼워서 뒤집어 쓰고 있으면 이불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드라도 괜찮았다. 그는 나를 발로 차면서 "애기를 떼야지 네가 직장을 계속 나가서 밥 굶지 않고 살 수 있어 이것아!" 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가 뭐라고 하든 대꾸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작전이었다.

밤새껏 시달린 나는 아침에 직장에 나갔다. 밤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서는 그냥 바닥에 하혈을 심하게 하였다. 핏덩이 속에서 작은 물주머니(양막) 속에 아주 작은 태아가 들어서는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즉 나는 유산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수도호스로 화장실 바닥의 피를 씻었다. 태아가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새벽까지 계속 피를 쏟으니 갑자기 얼굴이 붓고 허벅지가 반쪽처럼 되었다.

새벽에야 하혈이 멈추었다. 나는 학원에 가서 새벽 5시간의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은 나더러 "왜 하루 밤 사이에 누렇게 부었어요?" 라고 묻는다."어젯밤에 유산을 해서 그래" 그럼 집에 계셔야지 왜 나와요?" 라고 나이 든 여학생들이 질타를 한다.

발걸음이 아주 가볍고 머리 속은 더욱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한의원에 갔더니 맥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걸어 왔느냐고 물었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란다. 너무 위태롭다고. 다시 직장에 가서 유산을 하였다고 동료에게 말하니 병원에 가서 아기집을 깨끗이 청소를 해 주어야 한단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기 위해 마취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다.

"왜 안 깨어나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깨어나니 모두들 놀랬단다. 4시간 만에 깨어났다며 왜 혼자 왔느냐며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와서 내방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술도 취하지 않는 그가 갑자기 욕설과 함께 저녁밥을 해 달라 소리를 질렀다. "옛날 여자들은 밭에 가서 일하다가도 애를 낳고, 애 낳고도 바로 밭에 가서 일했어, 니 잘못으로 애를 죽였으면 미안해서라도 나한테 밥부터 해 주어야지." 나는 너무 많은 하혈을 해서 직장을 며칠 쉴 생각이었다. 그가 그래도 밥은 해 주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무슨 말을 할 기운이 없어 기다시피 가게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다 그의 밥만 해주고 그냥 잤다.


그 다음날 내가 유산한지 삼일째 되는 날에야 나는 꿈틀거리던 태아 생각이 났다. 화장실에 가서 하수구를 보니 가장자리에 태아가 걸려 있는데 그 때까지도 살아서 건드리니 꿈틀거렸다. 나는 생각 없이 하수구 뚜껑을 열고 물을 부어 하수구 속으로 태아를 내려보냈다. 그 다음날 생각하니 너무도 그 태아가 불쌍하였다. 내가 잘 묻어 줄줄 알고 하수구로 떠내려가지 못하고 걸려있었는데 어미인 내가 하수구로 흘러 보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아무리 작았지만 사람으로 자라려던 생명체였는데... 나는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잘 묻어 줄 것을 그 때는 그 생각을 못했다.

사람 형태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작은 생명체였지만 나는 그 생명체에게 빌고 싶다. "미안하구나. 좋은 땅에 묻어 주지 못해서...나를 용서해주렴." 그 후 나는 두 번이나 유산을 하였다. 사십 중반에 결혼을 하였는데도 세 번이나 임신을 한 것이다.
 

나는 문득 나 자신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 바닥에 주먹만한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나는 하수구 뚜껑을 열고 수도꼭지에 달린 호스로 나오는 세찬 물줄기를 이용하여 그 핏덩이를 하수구로 들어가도록 했다. 그렇게 하혈을 많이 했는데도 다섯 시간의 강의를 하고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어오고 병원에 가서 소파수술을 또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동안 전혀 어지럽다든가 그런 증상은 없고 마음은 편안하고 정신은 맑고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다만 병원에 가서 소파수술을 한 후에는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원래 위급에 처하면 아주 냉정해진다.

 

나중에 의대에 계신 선생님에게 아기집과 태아까지 모두 유산을 했는데도 병원에서, 소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 후 4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말씀 드리니 그 정도라면 소파수술은 하지 않았어야 했단다.

 

나는 기운을 차리게 되자 그가 나에게 한 언행에 대해서 따지면서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자기가 한 행동을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아기를 갖게 되면 직장을 나가지 않을 거고 그러면 굶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단다. 그 일로 해서 지금은 자기 옷은 자기가 빨아 입고 때때로 자기 먹을 음식도 하고 많이 도와준다.

 

林光子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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