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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생명의 詩

싱건지 항아리 추억

by 임광자 2016. 5. 16.

 

싱건지 항아리 추억

 

수십 년을 산 고향집은 추억이 곳곳에 알알이 맺어 있어

모퉁이를 돌아도 앞산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지난 세월이 영사기를 돌리는 것처럼 눈앞을 스친다.

 

내 집에는 어릴 적에 정지(부엌)문 옆에 놓고

가을이면 작은 무를 잎과 함께 고춧가루만 넣지 않고

물을 홍건이 부어 동치미 비슷하게 담은 싱건지를 담아서

겨울이면 여덟 명의 식구가 살얼음 동동 뜬 싱건지를  가져다가

끼니때 뿐만 아니라 밤에도 모여 않아서 잎이 누렇게 익은 싱건지

한 양푼 앞에 놓고 너도나도 하나씩 꺼내 봄까지 먹던 추억이 깃든

아주 큰 싱건지 항아리가 있다.

살얼음 동동 뜬 싱건지 물맛 끝내 주었다.

 

싱건지 항아리는 내가 고향집으로 이사 온 후에는

금이 가서 철사로 테를 매고 밑에 콘크리트 못으로

구멍을 낸 후에 너무 깊어 바닥에 스티로폼 조각들을 깔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더덕을 심었다.

 

그런데 마침 바닥을 돋아야 할 곳이 생겨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여러 곳에 금이 간

싱건지 항아리를 깨서 바닥을 돋우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기로 마음먹고 보니

보면 생각나는 어릴 적 추억 하나 사라진다.

 

더 두고 싶지만 너무 오래되어 훗날에 깨지면

뒤처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내 땅 한 곳에

묻어 줄 수 있을 때 묻어 주는 것이 추억을

조금씩이라도 꺼내 회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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