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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단숨소설(짧은 콩트)

큰 언니

by 임광자 2009. 12. 26.

큰 언니

 

엄니는 마루에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서 한숨을 짓고 뇌까리듯 혼잣말을 한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딸을 많이 낳게 하는가?-

엄니 옆에 앉아 함께 달을 보려고 방에서 마루로 나오던 큰 딸이 엄니가 달을 보고 하는 말을 듣는다.

-왜 딸 넷이 많아요. 누가 낳으래요.-

-막내는 이제 어리니 이렇게 달 밝은 밤에 죽으면 묻기도 쉽겠다.-

-그런 소리 자꾸 하면 그냥 딸 넷이 한꺼번에 죽을게 아들만 데리고 잘 살아요.-

큰 딸이 눈을 째리며 앙칼지게 대꾸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주먹만 해서 마치 산 인형처럼 보이는 막내의 자는 얼굴을 본다. 사람들이 너무 작아서 커도 사람 구실을 못할 거라고들 말했다. 막내가 작은 데는 엄니의 책임이 크다. 46세에 아이를 갖자 일가친척과 이웃사람들이 나온 배를 보고 말이 많았다.

 

아들과 딸을 낳아본 엄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임신 증세로 보아서 분명히 딸이 틀림없다고 애 떨어진다는 민간 약초를 먹고 굶으면 유산할지도 모른다고 굶기를 밥 먹듯 했다.  별의별 방법을 다 해 봤지만 뱃속의 아이는 떨어지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다. 물론 아들의 임신 증세를 보였다면 별의별 보약을 먹으며 노산이라 애가 잘못될까 봐 몸조심을 하였을 거다.

 

12월이었다. 여고 졸업반에 다니던 큰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자 아버지가 나와서 대문을 열어주며

-네 여동생 생겼다.-

-엄니가 애 낳았어요?-

-너 학교가고 난 후 아침에 낳았다.-

큰딸이 부리나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애기는 없고 엄니만 아랫목에 누워있다.

-아기 낳았다며 어디 있어?-

-.......-

엄니는 말이 없이 그냥 한숨만 내쉰다. 윗목 차가운 곳에 보자기가 깔려있다. 웬 보자기가 펼쳐져 있지 생각하고 걷자 거기에는 피가 묻은 채로 딱 주먹만 한 갓난아기가 엎어져 있다.

-왜 엎어놓았어?-

소리를 지르고는 아기를 자세히 관찰하니 숨을 쉰다. 죽지는 않았다.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아랫목에 제대로 눕히고

-이렇게 엎어 놓으면 숨 막혀 죽지 않아. 천벌 받을 거야!-

-그대로 두어라 죽게.-

-미쳤어.-

방에는 식어버린 물이 커다란 함지박에 있다. 함지박을 들고 밖으로 가서 물을 버리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가서 솥에 있는 따끈한 물을 가져다가 조심스럽게 목욕을 시켜서 아랫목에 제대로 눕히고는

-하늘이 무섭지도 않아? 천벌 받을 테니 그대로 둬. 언제부터 이렇게 엎어 놓았어?-

-아버지가 이 방을 나간 후에.-

-그럼 아버지는 엄니가 이렇게 한 줄 몰라?-

-딸 낳았다고 한숨을 길게 쉬고는 바로 나가들아.-

-나한테는 여동생 생겨서 좋겠다고 하던데.-

아무 말이 없다. 낳고 보니 딸에다가 너무 작아서 사람 구실을 못할 줄 알고 죽이려 했나 보다.

 

엄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외할머니가 세 번째 딸을 낳자 외할아버지는 소실을 들였다. 그런데 소실도 딸만 계속 낳았다 본처와 소실이 딸만 내리 낳자 또 다른 여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본처인 외할머니가 막내로 아들을 낳았다. 씨앗을 일찍이 본 외할머니는 화병이 들어서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들이 6살이 되자 세상을 떠났다. 작은댁은 계속 딸만 낳았다. 외삼촌은 외할머니의 시어머니인 외증조할머니가 기르다가 또 세상을 떠나자 서모가 키웠다. 그런 이유로 엄니는 아들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다. 엄니에게는 큰언니 다음으로 아들이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독자는 불안하다고 아들을 더 낳기를 바랐다. 아들이 있는데도 딸 넷이 많다고 틈틈이 넋두리다.

 

막내가 태어나서 엄니는 단 한 번도 똥오줌을 치워준 적도 없다. 옷을 해 입힌 적도 없다. 젖도 부족했다. 막내는 젖이 부족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들이 대신 젖을 물리면 엄니 젖 외는 절대로 먹지 않아서 큰 언니는 미음을 쑤어주고 옛날에 손가락 센비 과자가 있었는데 그걸 사서 주면 앙징맞은 작은 손에 센 비를 세워 꼭 쥐고서 빨아서 잘 먹었다.

 

큰 언니는 막내가 똥을 싸면 즉시 방문을 열고 기르고 있는 똥개를 부른다. 똥개는 큰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와 막내가 싼 방바닥의 똥을 다 핥아먹고는 똥꼬에 붙은 것까지 아주 깨끗이 핥아먹었다. 큰언니는 개가 막내의 똥을 다 먹고 나가면 막내의 엉덩이를 물로 씻어 주었다.

 

막내는 너무 작아서 큰언니가 한 팔에 끼고 다녔다. 마치 살아있는 인형처럼 언제나 안고 그렇게 큰언니가 키웠다. 그러다가 막내가 6살이 되었을 때 서울로 공부하려 왔다. 막내는 큰언니가 자기를 애지중지 키워서 살려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큰언니가 집을 떠나자 그때부터는 엄니가 막내를 길렀다. 엄니는 언제 막내를 죽으라 했느냐는 듯이 살갑게 대하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막내의 간호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엄니는 막내가 시집을 가서 첫아이를 낳자 울었다. 여자구실도 못하고 평생을 살 줄 알았는데 시집도 가고 아들 딸 낳고 살림 잘하고 사는 것을 보고 옛날을 많이 후회하였다.

 

엄니가 너무나 애지중지 하며 길러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은 청춘시절에 건강상으로 잘못되어 평생 엄니의 과보호 속에 살다가 엄니가 세상을 뜨고 나니  큰 언니가 보살펴 주고 있다.

가끔씩 큰 언니는

-어렸을 적에 엄니는 한 상에 너와 내가 밥을 먹게 하고는 네 반찬 내 반찬을 따로 놓아주고서는 네 반찬에는 손도 못되게 했어. 너에게는 고기반찬만 주고 나는 아무렇게 이것저것 다 해 주었지. 결국 지금에 와선 너는 성인병에 걸리고 나는 아무거나 잘 먹어서 이렇게 건강해. 너는 손가락 까닥하지 않게 하고 나에게는 일을 막 시켜서 나는 지금도 이일 저일 다 할 수 있어 건강해.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그렇게 해준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라고 말하며 남동생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여자를 너무 슬프게 했다. 하늘이 준 생명 정성껏 잘 기른다면 하늘의 복을 받지만 하늘의 뜻을 지나치게 거스르면 하늘은 가장 소중한 것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큰언니는 깨닫고 있다.


 

막내는 지금도 엄니 이야기를 하면 울먹이지만 큰언니가 아프다고 하면 전혀 감정이 없다. 큰언니는 막내가 엄니 이야기를 하면 씁쓸히 웃는다.

 

2009.12.26.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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