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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단숨소설(짧은 콩트)

살아있는 아들을 사망신고한 아버지

by 임광자 2008. 3. 14.

 

살아있는 아들을 사망 신고한 아버지

 

 

내가 정릉시장에 가면 나를 어슴푸레 기억하고 있는 약간 치매 끼가 있는 할머니가 있다. 나는 그 할머니를 잘 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나를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시장에서 나를 만나면 그 할머니는 내 옆구리를 툭 치고 갈 때가 있고 무의식 속의 의미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돈을 주면서

 

"반찬 좀 사 주어?"

 

라고 말한다. 그럼

 

"아주머니가 사!"

 

하고는 다시 할머니에게 돈을 준다. 내가 할머니를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 코끼리 약수터에서 할머니를 아주머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때의 기억으로 조금이라도 정신이 들었으면 해서다.

 

그 할머니가 정신이 조금 나가게 된 사건이 수년 전에 발생했다. 할머니의 남편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집을 짓는 일머리를 따라 다니는 그냥 일꾼이었다. 할머니의 아들딸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각지에 흩어져 살고 할머니는 서울의 정릉에서 거의 혼자 살았다. 노인네가 새벽에는 잠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4시쯤에 북악산에 있는 코끼리 약수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춥고 어슴푸레한 새벽에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뜨고 있는데 청년이 달려와서는 할머니를 붙잡고는 할머니 바지를 벗기려 하자

 

"다 늙은 할미한테 왜 이러느냐?"
"할머니건 아가씨건 상관없어 구멍만 있으면 돼."

"야! 이놈아! 너는 어미 아비도 없느냐?"

"나는 얼마 전에 감방에서 나와서 무서운 것이 없어. 너무 참아서 지금 견딜 수가 없어서 여기 와서 새벽에 오는 여자를 찾고 있었는데 네가 걸린 거야."

 

할머니가 발버둥 치면서 저항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청년은 할머니의 입을 주먹으로 때려서 입에서 피가 흘렀다. 할머니는 입이 아파서 소리를 지르기도 힘들었다. 청년은 야수처럼 달려들어서 수차례 할머니를 능욕을 해서 할머니는 하혈을 하고 혼절을 하였지만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이 얼핏 들은 할머니가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청년은 다시 할머니의 뺨을 때렸다. 피가 할머니 입에서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위아래 구멍에서 피를 흘렀다. 다행히도 멀리서 할머니의 외침을 들은 사람이 있어 약수터로 달려오고 있었다. 약수터 조금 아래에는 운동시설이 있고 배드민턴장이 있어서 이른 아침에 운동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코끼리 약수터로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해지자 청년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서 코끼리 바위 위로 쏜살 같이 올라서 도망을 쳤다. 그 뒷모습을 본 한 남자가 그를 뒤쫓고 다른 사람은 휴대폰을 때려서 119를 불렀다.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119가 와서 들것에 할머니를 올리고 응급처치를 하고 보니 치아가 다 나갔다. 아랫도리는 너무도 처참하게 망가져서 볼 수가 없다. 할머니는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달려오고 청년은 뒤쫓던 남자들에게 잡혀서 경찰에 넘겨졌다.

 

병원에 도착한 할머니는 치아가 다 빠져서 틀니를 하고 아랫도리가 다 망가져서 대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억 못하고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이 되어 치매 환자처럼 살아간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퇴원을 못했고 수개월 후에 퇴원을 했을 때는 그의 몸은 반쪽으로 말라 있었다. 약간 뚱뚱하고 중간키였던 할머니는 마르고 작은 체격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할머니를 잘 아는 동네 사람이 알려 주어서 그때의 그 할머니란 걸 알게 되었다.

 

건강했을 때 그 할머니는 겨울이면 약수터에 와서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개울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감자나 고구마를 구어서 나누어 주며 옛날 시집살이 이야기를 입심 좋게 많이도 해 주어서 우리들 모두가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산이 떠나가라고 웃었다. 여름이면 집에서 이것저것 반찬을 해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약수터 앞 도랑 위에 있는 다리 아래에 놓아두었다가 점심때 여러 할머니들과 나누어 먹었다. 혼자 살던 할머니는 집에 가면 너무도 심심하다고 약수터에 와서 거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착한 할머니가 그 일을 당하고는 약수터에 오는 사람도 적어지고 정릉터널 공사로 인해서 물맛도 변해서 지금은 치성드리는 사람만이 약수터에 간다.

 

그런 저런 사정을 잘 아는 정릉시장 사람들은 그 할머니가 욕을 해도 뭐라 해도 그냥 웃기만 한다. 할머니가 돈을 주면 돈에 맞추어 반찬거리를 준다. 아무도 할머니의 돈을 더 받거나 하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에게 할머니가 돈을 주어도 아무도 할머니 돈을 받지 않는다.

 

 

할머니를 겁탈한 청년을 잡고 보니 우리 동네 청년이었다. 어려서부터 못쓸 짓을 일삼아 오다가 폭행죄로 감방에 들어가 있다가 출소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일을 저질렀단다. 나이도 어린 스물두 살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적에 둘이서 맞벌이를 하느라고 맏이인 아이를 혼자 집에서 놀게 하였단다. 그냥 막 놓아기른 아들이 청년으로 자랐을 때는 경제적으로는 윤택하게 되었지만 아들은 이미 탈선의 길을 가고 있어서 고치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고칠 수가 없었단다. 툭하면 소년원이고 감방행이었다. 여자들의 관계도 복잡하여 그 뒤처리도 부모가 해주었단다. 그가 감방에 가기 전에 사귀던 여자가 이번에 출소해서 찾아가니 살던 곳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불안하였단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번 할머니 사건의 범행자가 바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경찰로부터 듣고는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망신고를 해 버렸다. 그리고 동네를 떠났다.

 

 

林光子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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