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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짓기

엄니의 옹기들이 만든 고추밭

by 임광자 2008. 4. 27.
 

 

 

엄니의 옹기들이 만든 고추밭


엄니가 세상 떠나면서 남긴 옹기그릇들을 보니 세월의 무게가 너무 짓눌러서일까 금이 많이 가서 두른 테가 녹이 쓸어 끓어질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옹기는 숨을 잘 쉬어서 거기에 내가 먹을 채소를 심으면 뿌리가 좋아할 것 같다. 뿌리도 숨을 쉬니까 우리처럼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 놓는다. 더군다나 옹기의 색깔은 뿌리가 싫어하는 빛도 차단시켜 주어 좋다. 금이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가서 물이 얼마나 셀 것인지 알기 위해서 물을 담아 두었다. 물이 서서히 아주 조금씩 금 간 부분으로 스며 나와 흐른다. 금이 많이 간 옹기는 그대로 흙을 넣고 금이 적게 간 옹기는 물 빠지는 구멍을 내야겠다.


날카로운 세멘 못 하나와 장도리를 들고 옹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옹기를 뒤집어 바닥이 위로 가게하고는 세멘 못의 날카로운 부분을 옹기바닥의 가운데 닿게 세우고 납작한 머리 위를 장도리 머리로 살살 때린다. 쉬었다 때리고 쉬었다 때리며 옹기에게 충격을 적게 준다. 금이 많이 가서 잘못하면 깨지기 쉽다. 아주 조심스럽게 때리기를 계속하니 구멍이 뻥! 뚫린다. 뻥 뚫린 구멍 옆으로 세멘 못을 이동해가며 힘을 가하자 구멍이 점점 커진다. 읏샤! 성공이다.


옹기에 집터에 있는 흙을 채운다. 얼마나 오랜만에 햇빛을 본 흙인가. 이제 항상 빛을 보며 식물을 품어 기르는 흙이 되어 보라고 속삭이며 옹기에 집터 흙을 채웠다. 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집터의 흙은 내일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 갈 것이다.


집터 흙이 채워진 옹기마다 오이맛고추 모종 9개를 사다 심었다. 그리고 다른 옹기에는 내일 고창 장날 모종을 사서 여러 가지를 골고루 심을 예정이다. 다 심으면 사진 찍어 올릴 것이다.


나는 어디서 살던 밭을 만들고 봄이면 씨 뿌리고 모종을 심어서 채소를 길러서 따 먹는다. 꽃밭도 만들고 키 작은 유실수도 심는다. 내가 생명체를 길러서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즐겁다.


林光子 200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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