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은 가로등 불빛을 싫어 해!
우리 집 앞길 건너 골목 끝에는 여인숙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깔끔 여인숙이고 다른 하나는 허름 여인숙이다.
하루는 차조기와 컴프리를 심을 수 있는 빈 땅이 없을까 하고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탐색을 하며 걷고 있었다. 허름 여인숙 주변에 자갈 공터가 조금 있다. 그걸 텃밭으로 개간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허름 여인숙 여주인이 한 손에는 양철통을 다른 손에는 종이 쓰레기와 라이터를 들고 자갈 공터로 온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태우시려고요?”
“이거 영수증하고 청구서야. 편지도 있고. 그래서 태우려고.”
“여긴 참 좋다 이런 것을 태울 수 있으니. 그냥 버리기도 그렇고 잘게 찢어서 버리기도 그런 것들인데 태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태울 것 있으면 여기 가지고 와서 태워요.”
“그래도 되어요?”
“우리 집 앞 말고 좀 떨어진 공터에서 태우면 돼재.”
“여기가 참 좋을 것 같은데. 아하! 아주머니 여기 보아요. 돌미나리가 참 많아요.”
“돌미나리! 우리 집 목욕탕에서 나오는 물 먹고 자라는 것들인데 나물 해 먹었더니 뻐새서 맛 없어.”
“생즙 내 먹으면 되지요.”
“생즙?”
“돌미나리 생즙 내 먹으면 열도 내리고 해독작용을 해서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한테 좋은데요.”
“열이 내려?”
“네.”
“내가 요즘 얼굴이 화끈거리거든.”
“아주머니 갱년기지요. 얼굴을 보니 그럴 것 같아요.”
“갱년기가 무언데?”
“달거리가 오락가락 없어지려고 하는 때를 말하는 데요.”
“맞아. 내가 아주 정확했는데 그게 이상하다 했는데. 그런가 보네.”
아주머니가 반말을 잘 뱉는걸 보니 내가 자기보다 훨씬 아래인줄 아는가 보다. 아무리 보아도 나 보다 어린 것 같구먼. 뭐 그런 것이야 나중에 알면 고쳐질 것이고 지금은 친해지고 싶다. 그녀 가슴에 쌓이고 쌓인 이야기보따리가 첩첩산중으로 있을 것 같아서 그걸 듣고 싶어서다.
“만약에 여기 돌미나리 먹으려면 얼른 잠간 뜯어서 가지고 가.”
“천천히 뜯으면 안 되어요?”
“여인숙 입구에 사람이 있으면 손님이 안 와.”
“네!?”
“그런 짓이 뭐가 당당하다고 사람 있는데 우리 집 오겠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아주머니만 바라보았다. 한 번도 이 여인숙으로 낮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 여인숙에 아가씨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내가 그냥 양철통 속에서 타는 종이를 보고 있으려니까 연기가 아직도 나고 있는데 집에서 멀리 가져다 놓고는
“저게 다 타서 식으면 그 재를 여기 밭에 뿌려요. 나는 채소를 기를 줄을 몰라서 옆에서 하는 걸 보고 따라 해 보는 거야.”
“여기 빈 땅이 많네요. 컴프리와 차조기 심으면 안 될까요?”
“그게 어디에 쓰는데?”
“차조기는 혈액순환이 잘되어 피로가 덜 하고요. 컴프리도 좋아요. 이런 땅에 잘 살아요. 그냥 한 번 심고서는 따다 먹기만 하면 되어요. 저절로 씨 뿌리고 저절로 자라요.”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면서 여인숙 옆에 흐르고 있는 작은 하수로 반대편에 눈을 쏘아붙이고 있다. 거기에 차조기를 심으면 잘 될 것 같다. 모래자갈땅에 옆에는 거름(?)이 흐르고 햇빛이 쨍쨍 비치는 곳이다.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키려고 밤에 방문을 열고 집터로 나오니 어둡다. 어슴푸레하다. 멀리 공중화장실 근처 길가의 가로등 불빛만 아스라이 온다. 바로 집터 앞길의 가로등이 꺼졌다. 아주 강한 불빛이라서 온 집터가 대낮같이 밝았는데 어둑한 분위기가 집터에 감돌고 있으니 기분이 별로다. 나는 밝은 것을 좋아해서 어둠침침하면 기분이 별로다. 가로등 아래 길에 서서 가로등을 보면서
“왜 가로등이 꺼졌지.”
혼자 중얼거리자. 지나는 할머니가
“누구 보고 말해요?”
“가로등이 꺼져서 나 혼자 중얼 거렸어요.”
“정말 깜깜하네.”
“저거 어떻게 켜요?”
“관리자한테 전화해요.”
“전화번호 모르는데요.”
“114로 물어 보아서 담당한테 전화해요.”
“할머니가 해 주실래요?”
“여기 사는 사람이 전화해야 해요.”
오늘 아침 골목의 가게에 가서
“가로등이 꺼졌어요?”
“그래요. 나는 몰랐는데.”
“왜 꺼졌을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확실하지는 안한데 들리는 소문에는 여인숙에서 가로등이 너무 밝다고 말했대.”
“왜요.”
“너무 밝으면 손님이 적게 온대.”
“깜깜한 것 보다는 훤한 것이 낫지 않아요.”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한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을 했다. 여인숙 아주머니도 입구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안 온다고 하고 골목 가게 아주머니도 가로등이 너무 밝으면 여인숙이 싫어한다고 하는 걸 보니 분명 볼품없고 사람이 드나드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틈새인가 남녀가 거기에 들어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모텔 보다는 훨씬 쌀 테니까.
남이야 밝은 것이 싫을지 몰라도 나는 밝은 것이 좋다. 몇 군데에 전화를 해서 드디어 가로등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신고를 했다. 가로등 불이 들어오려면 며칠 걸린다는 대답이다. 그래서
“여기 새집을 지으려고 헌집을 헐고 방만 있는데서 사는데요. 방문만 열면 허허벌판인데 어느 구석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몰라서 무서워요. 얼른 가로등 불 밝혀 주어요.”
“지금 신고 들어와 접수된 것이 많아서 며칠 걸려요.”
“오늘밤 안 되어요?”
“오늘밤은 절대로 안 되어요.”
“내일 밤은요?”
“내일도 힘들어요. 암튼 되도록 빨리 고쳐 드릴게요.”
“앞으로 자재도 오고하면 그걸 지켜야 하니 밝아야 하거든요”
“네.”
“밤에 으스스 무서워요. 얼른 고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로등이 꺼진 날 바로 신고 하는 건데 누가 전화 안하나 하고 눈치만 보다가 어둔 밤을 여러 날 더 보내게 생겼다.
“아아~ 밝은 밤이여 얼른 오~라!”
밝은 가로등이 없는 지금 여인숙은 기분 좋겠다!
林光子 200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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