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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짓기

대낮에 방문이 안으로 잠기고.

by 임광자 2008. 2. 24.
 

대낮에 방문이 안으로 잠기고.



오늘 아침에 엄니의 유품 중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고르다가 옛날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우리 식구 모두 모여서 밥을 먹던 큰 교자상을 발견하였다. 어릴 적에 우리들이 꼬부랑글씨로 낙서를 한 흔적이 여기 저기 그림처럼 새겨져 있다. 송판으로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나무 상이라 잘 닦아서 바퀴를 달아서 내 노트북 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외선 처리를 하려고 햇볕을 쪼였다. 쌀 뒤쥐도 내어놓았다. 여기다가도 바퀴를 달아서 자잘한 것들 넣어 두어야겠다.


어릴 적에 사용하던 통나무 절구통도 나왔다. 어지간하면 사용하려고 보니 너무 많이 상했다. 밑쪽이 처절하게 벌레들한테 공격을 당해서 들어보니 우수수 그냥 가루로 떨어져 나간다. 그 동안 벌레들의 좋은 삶터가 된 것 같다. 얼마나 처절하게 공격을 당했으면 그렇게 단단하던 나무가 가루로 변했을까. 아깝다 잘 보관하였으면 뒤집어서 의자로라도 사용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다가 한쪽에 커다란 상자 같은 것이 보여서 앞으로 당겨서 자세히 보니 칠은 벗겨졌어도 틀림없이 대학에 처음 입학 하였을 적에 부모님이 목수에게 부탁하여 송판으로 짜주신 쌀 뒤쥐다. 두 달에 한번씩 80Kg 쌀 한 가마씩을 보내주면 남동생과 나는 먹고 남아서 옆방에서 어렵게 고학을 하는 서울대 사범대 다니는 학생들에게 조금씩 주었다. 그 친구들 정말 하루하루 끼니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었다. 그 학생들을 십여 년도 훨씬 넘는 어느 날 남동생이 서울의 시내버스에서 만났는데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면서 무척 반가워하였단다. 그 사람들도 이젠 어디선가 늙어가고 있겠지. 그 때 연락처를 알려 주었는데 동생이 잃어버려서 연락을 다시 할 수 없었다.


들어보니 묵직하다. 내가 서울에서 내 책을 넣어서 보냈다. 그 책들이 지금까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면서 뚜껑을 열어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내가 보냈던 책은 간곳이 없고 남동생의 입시 책이 가득하다. 기가 막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남동생한테 따져 볼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금에 와서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아마도 질투가 났던 것일까. 아니다 어쩜 엄니의 아들 사랑이 그렇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 소유가 되고 말았다. 이 뒤쥐에도 바퀴를 달아서 이것저것 넣어 두고서 사용할 생각이다. 옛날을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위에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드니 옆집의 아주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층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왜 짐을 정리해요?”

“집을 다시 지으려고요. 엄니가 사용하던 짐들을 고르고 있어요.”

“여기서 살 거요?”

“이 권사님 큰 딸이에요. 생활생물 연구소를 지으려고요.”

“아아! 그래요. 이 권사님 큰딸이에요. 다른 딸은 다 아는데 큰딸은 처음이네요. 언제부터 집을 지어요?”

“제가 집에 자주 오지 못했어요. 저 집이 나가지 않아서 못 짓고 있어요.” 말하며 세입자 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아주머니 저 아래에 방 얻었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그런데 짐이 그대로 있어요.”

“한차 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요.”

“지금도 많아요.”

“그래요.”


갑자기 세입자의 출입문 틈새로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눈을 틈새에 고정을 시키고 속을 보니 짐들이 많다. 세입자는 우리 집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잠갔다. 그래서 공터로 난 출입문 쪽으로 가 보기로 하고 갔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들어가니 부엌이다. 싱크대를 사용한지가 오래고 찬장에는 그릇이 가득이다. 냉장고문을 열어보니 음식이 썩어간다. 바닥도 신발을 신고 드나든 흔적이 역력하다. 방문의 자물통이 아래에 내려져 있어서 방문을 흔들어 보는데 안으로 잠겨있다. 아무리 흔들어도 기척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하는데 영 궁금하다. 그래서 다시 그리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사람이 나오나 보려고 주시하고 있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한다. 나도 손을 흔들고는 내 쪽으로 오라는 표시를 하니 온다.


“저기 봐요. 열쇠를 잠그지 않았지요?”

“그러네요.”

“우리 함께 들어가 보아요. 방으로 통하는 문이 안으로 잠겼어요.”


우린 둘이 들어가서 잠긴 방문을 흔들어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이상하네요. 안에서 문이 잠겼으면 분명히 사람이 안에 있는데 인기척이 없지...창문을 열어 보았어요?”

“창문은 열어보지 않았어요.”

“안에서 인기척을 안 하는데 창문을 열기가 뭐 해서요?”

“실은 그래요.”


우린 그 앞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며 잠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으나 오래도록 아무 기척이 없었다.



林光子 200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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