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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단숨소설(짧은 콩트)

단숨소설47: “올 때는 빈손이나 갈 때는 빈손이 아닐 겁니다” 學僧

by 임광자 2007. 10. 31.

 

 

 

단숨 소설 47: “올 때는 빈손이나 갈 때는 빈손이 아닐  겁니다” 學僧

 

 

북한산이 국립공원이 되기 전 이야기다. 여동생과 함께 처음 대흥사를 찾았을 때 이야기다. 그 당시에 대흥사는 큰 절이었다. 계곡으로 물도 졸졸 흐르고 요사 체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불교신도가 아닌데도 사찰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날도 절에 들어가서 그냥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주 앳되고 하얗고 맑은 피부에 조각처럼 잘 생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앞으로 온다.

 

“어서 오세요.”

“빈손으로 왔습니다.”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에는 빈손이 아닐 겁니다.”

“인생살이가 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처음에는 빈손이나 갈 때는 빈손이 아닙니다.”

“지금 제 손에는 아무 것도 없고 갈 때도 아무것도 없을 텐데요?”

“손에는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지금 주위를 본 것과 저와 대화를 한 것이 다 머릿속에 저장될 것이니 빈손이 아니지요.”
“태어날 때도 빈손이고 죽을 때도 빈손인데요?”

“아닙니다. 태어날 때는 빈손이나 죽을 때는 빈손이 아닙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태어날 때는 전생의 업을 안고 오고 죽을 때는 내 생의 업을 지고 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당하면 업보라고 하는군요.”

“보살님은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아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겁니다.”

“네?”

“원래 보살님은 천상에 살았는데 한 남자에게 죄를 지어서 남자로 태어날 것을 여자로 태어났지요. 그래서 세상에 잘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네?”

“앞으로 공덕을 많이 쌓으며 살아가십시오. 그래야 천상에서 지은 죄를 갚을  겁니다.

“혹시 학승이 아니신지요?”
“동국대학에 올해 입학했습니다.”

“어쩐지 다른 스님과는 말씀하시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도 보살님을 처음 본 순간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 앞으로 오셨군요.”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았습니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저는 빈손으로 왔지만 스님과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머릿속에 채우고 갑니다.”

“또 오실 겁니까?”

“여기 오래 머무십니까?”

“얼마 동안은 이곳에서 수양을 할까 합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려가야겠습니다. 시간 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는 갓 동국대학 불교학과에 입학한 학승이었다. 그러니 그 당시에 겨우 20세 전후였다. 그런데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나는 젊은 시절에는 한 번 말을 꺼내면 누구와 대화를 하던 청산유수였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한강에 빠지면 몸뚱이는 물에 가라앉고 입만 물 위에 동동 떠서 나불거릴 거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스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막힘이 많았다. 그리고 많이 깨달았음을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는 빈손이 아니다>라는 말뿐이다.

 

그날 대흥사에서 내려올 때는 어스름이었다. 내려오는 길가 곳곳에는 술판이 벌어지고 음주와 가무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거기다가 술 취한 남정네들이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같이 놀다 가란다. 나는 여동생 손을 잡고 어떻게 내려온 줄도 모르고 막 뛰어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다시는 대흥사에 가지를 못했다. 꼭 그 스님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가지를 못했다. 국립공원으로 된 후에 북한산에서의 음주와 가무를 금지시켰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대흥사를 찾았을 때는 요사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터만 남고 위에 있던 대웅전 건물만 남아 있다. 스님들도 옛날의 스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른들께 대�사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 당시는 전국의 깡패 소탕작전이 있었고 모두 끌어다가 삼청교육대로 보냈는데 그때 그 요사 체에 숨어든 유명한 깡패 셋을 잡느라고 다 부서지고 불태워졌어.”

 

살아 계신다면 지금쯤 그 스님은 중년이 되었을 테고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 훌륭한 큰스님이 되어 계실 거다. 어디 계시던 성불 하소서().

 

내가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는 옆지기와 결혼을 하고 그를 알코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20여 년을 충견처럼 지키는 생활을 한 것이 내가 전생에서 지은 죄를 씻기 위한 업보가 아닐까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업보가 풀려서 조금 자유로워질 거라고 예견한다. 대흥사에서 만났던 그 학승은  닦아 올 내 운명을 알려주고 내 업보를 이겨내야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암시를 준 것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내 사주에 수옥 살(囚獄殺)이 있는 거다. 즉 감옥에 간다는 거다. 감옥 대신 나는 알코올 세포와의 전쟁을 오랜 세월 혹독하게 치르고 끝내  이겼다. 이긴 후의 그 쾌감을 아는가? 수옥 살은 무엇인가에 미쳐서 갇혀 사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연예인이라면 인기가 좋아서 행동이 부자유스럽게 되는 경우도 해당된다. 이제는 툭툭 털고 내 의지대로 살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 꿈을 펼칠 것이다.

 

지금 내 손 안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손바닥을 펴고 읽어보려 한다. 내가 이 세상 떠날 적에 어떤 업을 등에 지고 갈 것인가 곰곰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林光子 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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