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 소설 46: 나를 전율(戰慄)시키는 것들
국민대 쪽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곧장 뻗은 대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걷다가 아름답게 물든 단풍잎이 바람 불어 막 우수수 쏟아지며 공중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광경을 만나 나는 멍한 자세로 그걸 보느라 정신을 놓고 감상을 한다. 그러다가 아참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보면 바람이 멎어 단풍잎의 광란의 춤이 사라진 뒤다. 다시 바람이 불어주기를 기다리다 바람이 불어 디카의 셔터를 막 누르는데 앞에서 나처럼 디카를 들이대던 아저씨가 웃으며
“디카에 잡히지 않네요. 동영상으로 해야 될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웃어 주고는 내가 찍은 것을 검토해보니 역시 흐릿한 모습만 보이고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낙엽이 너무 우수수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한 잎 두 잎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나 벚꽃이 눈처럼 날리며 떨어지는 것은 디카에 잘 찍혔었다.
나는 디카를 집 속에 넣고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긋불긋한 단풍잎의 광란의 춤을 스릴 속으로 빠져 들며 관람하였다. 바람이 멈칫해지자 나는 산등성이에 난 오솔길로 접어든다. 대로를 걷는 것보다 오솔길을 걷는 것이 더한 즐거움을 준다. 구불구불 꼬불꼬불 오솔길을 걷다가 나무가 있으면 줄기를 잡고 몸을 위쪽으로 옮기면 참 편하다. 그러다가 옆에 나무가 있고 계단 같이 높낮이가 있는 곳을 만나면 줄기를 잡고서 몸의 중심을 고정시킨 뒤에 낮은 곳의 발을 들어 쭉 뻗어서는 발 끝을 아래로 하고 힘을 빼고 앞으로 쭉 뻗쳤다가 뒤로 쭉 뻗쳤다가를 반복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위로 걷는다. 스트레칭을 할 때 오른 다리를 스트레칭을 해 주었다면 다음에는 왼 다리를 해 주어야 균형이 맞아서 피로하지 않다. 한쪽만 치중하면 혈액순환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즉 스트레칭을 덜 받은 쪽의 다리는 혈액순환을 덜하게 되어 피로하다.
오늘은 오솔길로 올라가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한명도 없다. 대로로는 몇 명이 지나갔는데 왜 오솔길로는 아무도 가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몰랐다. 집에 와서야 동네 아주머니가 내가 잘 다니는 북한산에 멧돼지가 나타났었단다. 뭐 신문에도 나왔다나. 멧돼지가 막 뛰어내려오는 것을 본 아저씨가 얼른 배낭을 벗어서 땅에 던지고 큰 나무 위로 막 올라갔단다. 다음날 그 아저씨는 다시 한번 그 나무에 올라보려고 하니 올라 가지지 않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갑자기 닭도 급하면 지붕 위로 오르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닭 �던 개 지붕 처다 보기라는 말도 있다. 보통 때는 통하지 않던 것도 급하면 통하는 거다.
한참을 오르면 넓은 바위가 나온다. 그곳에는 가려지는 나무가 없고 산등성이 꼭대기라서 햇볕이 쪼여서 따뜻하고 여름날에는 바람이 잘 불어 시원한 곳이 있다. 동쪽으로 탁 트여서 시내의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나타난다.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곳이다. 멀리 동쪽으로 아파트 숲을 보면서 “저 속진 세상에서는 지금도 탐욕의 역사가 엮어지고 있겠지” 생각을 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곳. 나는 여기서 생각을 한다.
자연이 만든 창작품이나 인간이 만든 작품이 내 눈에 들어 와 나를 전율시킬 때가 있다. 그냥 두렵고 오싹해서 파르르 떨리는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엄습하는 작품들이 있다. 등신불이란 단편을 읽으면서 내 몸은 전율을 일으키며 숨도 쉬지 못하게 나를 흥분시키며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을 진정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서 다시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는 어느 날인가 텔레비전에서 유럽 오스트리아의 한 왕궁의 벽에 걸린 그림을 보여주는데 역시 나는 전율에 떨어서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 그림이었는데 그 눈빛에는 강열한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혼이 그 속에 들어가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테가 연상의 베아트리체를 아홉 살에 길에서 보고는 한눈에 반해서 <신곡>이라는 글을 써서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지 그 마음이 대단히 아름답게 생각된다. 한눈에 반해서 일생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감성을 가졌다면 그런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행복할 것 같다.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지나는 나그네가 나에게 묻는다.
“저어기 보이는 큰 바위 위에 사람이 자고 있는 것 같지요?”
일어나서 나그네가 가리키는 바위를 보니 높고 넓은 바위 위에 사람 같은 물체가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리 부분이 없다.
“큰 바위 위에 작은 평바위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또 저기에 사람이 누웠다면 나도 그 바위로 올라가고 싶었는데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나그네가 지나간다. 한참 있으니 아주머니 4명이 오면서
“이리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요?”
“국민대 쪽 공원 입구가 나옵니다.”
“거봐! 그냥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고 하였잖아.”
우르르 몰려서 아래로 내려간다. 그녀들이 내려 간 후에 나는 내 짐을 챙겨서 배낭에 넣고 다시 걷는다. 형제봉 능선의 단풍이 무르익어간다. 내려오는 길에 한 아저씨를 만나서 같이 내려오는데 다람쥐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지 나무 위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그런 광경은 처음이라서 나는 전율을 느끼며 구경하고 있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순식간에 휙 나른다. 쫓겨나는 거다. 그리고서 아저씨 배낭 속에서 뭐가 막 꿈틀거린다. 아저씨가 내려오는 길이라 3단 지팡이를 접어서 배낭에 넣고 지퍼를 조금 덜 닫아서 틈새가 벌어졌는데 그 틈새 속으로 다람쥐가 떨어져 들어간 것이다. 아저씨는 놀라서 꿈틀거리는 배낭을 벗어서 땅에 내려놓는다. 다람쥐란 놈 들어갈 때는 엉겁결에 들어갔는데 배낭 속이 복잡하여 이것저것 틈새를 뚫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나 보다. 나는 꿈틀거리는 배낭을 보며 즐기는데 아저씨가 지퍼를 열고 다람쥐를 꺼내서 놓아주니 잽싸게 달아난다.
나에게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을 만나면 나는 짜릿한 흥분을 하고 곧이어 쾌감을 느낀다. 어쩔 때는 산들바람에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도 기쁨을 느낀다. 여름날 새빨갛게 피는 칸나꽃을 보면서도... 눈을 맞으며 피어있는 국화를 볼 때, 봄에 새싹이 굳은 땅을 뚫고 쏟아 오르는 모습을 볼 때도 나는 전율을 느끼고 경외심을 갖는다.
林光子 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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