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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세포와의 전쟁

알콜세포와의 전쟁→4. "나 좀 데려가 줘?"

by 임광자 2005. 11. 27.

  

한 십 수년 전 일이다. 밤 열 두시가 다 되어 가는데 전화벨이 따르릉 울린다. 분명 그의 전화다.

"여기 개포동인데 나 좀 데려가?"
"지금이 몇 시 인데요? 차도 없어요."
"택시 타고 와서 데리고 가. 지금 정신이 없어."
"심야 버스가 있으면 타고 오세요."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마 밤 중이었을 거다. 어떻게 해서인지 16번 좌석버스를 타고서는 잠이 들어 버려서 청수장에 있는 종점에 내렸단다. 그곳에서는 차가 이미 끊기고 택시도 잡을 수가 없단다. 나도 오밤중에 그곳에 갈 수가 없으니 알아서 오라고 말했다.

새벽 세시쯤이었을 거다.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 보니 그가 초죽음이 되어 마루 위에 픽 쓰러진다. 옷은 완전히 흙 범벅이고 머리는 수세미처럼 헝크러저 있다.
"어떻게 된거에요?"
"청수장에서 산을 넘어 여기까지 걸어왔어."
"청수장에서 어떻게 산을 넘어 걸어와요?"
"아냐 산장 아파트 뒤로 길이 있어."
나는 그 때까지 그 길을 모르고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겼다.

며칠 후 나는 배밭골에서 북악터널로 가는 8차선 도로 위에 있는 육교를 건너 국민대 후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니 그곳은 바로 북한산 형제봉으로 가는 능선 길의 입구가 나왔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솔 냄새가 향기러워 향내를 맡느라 한참을 앉아 있었다. 북한산 언저리를 지나니 내리막길이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은 허술하지만 빈 땅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 보기가 좋다. 담장엔 호박줄기가 힘차게 뻗고 크고 작은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집집에는 빨래 줄이 쳐져 있고 빨래들이 널려 있다.

 

성북동 생각이 난다. 길상사를 가면서 성북동을 지나려면 마치 유령촌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인도도 없는 아스팔트 길 위로는 차들만 쌩쌩 달리고 사람이 없다. 그저 고요롭기만 한 거대한 집들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가게도 없다. 햇빛 좋은 여름날에도 이불이나 요 또는 빨래가 널려 있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한곳에 이르니 조그만 빈 땅에 피부가 눈부시도록 하얀 아주머니 한 분이 고추, 상추,쑥갓,아욱 등등을 심고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이 없네요?
없어요. 저 아래로 30분은 가야 사람 구경을 해요.
옆집하고 왔다 갔다 하면 사람 구경을 할 수 있잖아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요.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을 못하고 물건을 살 수가 없어 좀 그래요.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는데요?
35년을 살았어요.
이곳에 자소엽을 몇 포기 심어도 될까요?
그게 뭔대요?
잎을 따서 끓여 먹으면 기침 나올 때나 혈액순환, 이뇨작용에 좋아요.
그럼 심으세요.
나는 가지고 간 자소엽을 그곳에 심고 햇빛이 드는 길가 산에도 심었다. 그 후 몇 년째 가지를 못했는데 자소엽은  어디에선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을까. 다음 달에는 한번 가 봐야겠다.

집은 거대하나 인기척이 없는 성북동과 집은 허술하나 큰 나무 아래 편상을 놓고 아이들과 노인네들이 앉아 있는 이곳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흙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작은 길을 따라 내려가니 보다 더 큰 집들이 보이고 밭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초록이 넘실거리는 작은 벌판을 건너서 산장 아파트가 보인다. 그 때서야 나는 그가 한 말이 생각 났다.
그의 말이 옳았는데 나는 그럴리 없다고 우겼다. 남대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남대문을 본 사람이 안 본 사람한테 진다고 한 말이 기억 난다. 지금은 그 길이 확장되고 포장되어 아주 근사하게 소방도로로 꾸며져 있다.

십 여년 전만 해도 그는 한밤중에 지금 자기가 어떤 곳에 있으니 데려가라고 전화를 곧잘 했다.  평택, 수원, 개포동, 삼송리 등등에서. 그러나 술을 덜 마시면서부터는 일년 내내 집을 떠나지 않아서 답답하다. 남자란 집 밖으로 나가야지 집안에만 박혀 있으면 여자들이 힘들다.

때때로 나는 낯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그가 길가에 쓰러져 있어 지나는 사람이 전화를 해준 것이다. 몇 번은 택시로 길가에 쓰러져 있는 걸 실어왔다. 그럴 땐 사람이 아니라 짐짝과도 같다. 축 늘어진 그의 몸은 알콜로 절여져 있는 상태다. 그러나 안되겠다 싶어 몇 년을 실어 나르다가 전화가 와도 그대로 두었다. 그 후부터는 자기가 술을 자제 하는 것 같았다. 스러지지 않으려고......

 

 

林 光子

20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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