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콜세포와의 전쟁

알콜세포와의 전쟁→ 1. 폐인이지만 그 재주가 아깝다

by 임광자 2005. 9. 20.

빼빼 마른 그는 굼뱅이처럼 등을 둥굴게 구부려 머리를 배에 대고 몸까지 둥굴게 만들어 알콜에 절여져 수분이 빠져나가 더욱 작아진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흔들어도 움직이지는 않고 숨은 끊어지지 않았는데, 꽉 쥔 손안에 구겨진 한지(韓紙)가 있어 펴보니 산수화(山水畵) 춘경(春景) 한 점이 있었다. 화제(畵題)로 쓴 붓글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주 잘 쓴 달필이다. 재주가 아깝구나! 온몸에서 풍기는 알콜냄새는 영락없이 실험실에서 생쥐 실험을 할 때 사용하던 그 냄새와도 같다. 그렇다 이 사람은 재주가 아까우니 알콜 속에서 꺼내보자. 물에 빠진 사람 건저 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든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주는 사람이 갖고 싶어서 갖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한 개인에게 내려주는 은총이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 화가 아저씨 또 쓸어졌네..."
"너 아는 사람이니?"
"네. 우리들한테 과자도 사주고 그림도 그려주어요."
"어디 사는데?"
"저 언덕 너머에 살아요."
"가족들은 있니?"

“혼자 살아요."

아침에 발견된 그 사람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데려다 뉘었든히 고맙다고 사군자를 그려 주겠다고 한다. 난초, 국화, 매화, 대나무가 16절지 속에서 춤을 춘다. 알콜을 품고 있는 뇌세포가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나 보다. 벽에는 그리다 만 산수화가 있는데 구름 위에 떠 있는 나무들이 마치 또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 같다. 다 그려진 관음보살이 너무도 아름답다. 저건 어떻게 그린 것일까? 동네 아이들 말로는 계속 취해 있다는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관음보살은 언제 그렸나요?"
"그림을 그릴 때는 술을 마시지 않을려고 알콜빙이라는 약을 먹어요"
"얼마동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어요?"
"일주일 정도요"

그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얼굴이 검붉다. 검붉은 목은 닭살처럼 우둘투둘 하다. 작은 커피잔으로 20분마다 소주를 한잔씩 마신다. 나 아니고도 이웃들이 저녁에 놀려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집이니 작품을 감상도 할겸 사람들이 수시로 놀러오나보다. 조금씩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얼굴을 보니 심한데요?"
나는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 사람 3개월을 못넘겨요"
"왜 저렇게 술을 마실까요?"
"사연이 많겠지만 의지가 약해서겠지요."

나는 내 특유의 교만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모험심이 발동한거다. 살리고 보자. 얼마나 걸릴까? 얼굴색을 보니 오장육부가 다 상한 것 같으니 아무리 잘해도 3년을 넘기지 않겠지. 3년이면 죽든지 살든지 하나로 결정나겠지. 글씨도, 그림도 아까우니 조금 참아보자. 그러나 여러 번이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첫사랑 생각이 나서 결심이 깨지면 어떡하나. 너무도 심하게 앓았던 첫사랑이라서 사십 중반이 되어서도 결혼 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나도 참 못났다. 가족들의 성화도 귀찮고 애라 모르겠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면 고맙다고 할까.


***************************

나는 그와 사는 동안 생활비를 받아 본 기억이 없다. 그래도 그는 항상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알콜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 다니는 직장을 포기해야 했고, 술꾼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친지들과 싸워야 했고, 술주정이 심할 때는 공중변소에서, 또는 파출소의 작은방에서 밤을 지새야만 했고, 시골에 계신 늙으신 어머님곁에서 하루 밤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고, 그를 지키기 위해 집 지키는 개처럼 그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술이 먹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면 집에 있는 물건을 동네 가게에 맡기고 술을 외상으로 사다 마신다. 한번은 내 사진을 갖다 맡기고 술을 사 먹었다. 나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그가 맡긴 물건을 찾고 술값을 갚아야만 했다. 또는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술과 맞바꾸어 마신다. 한 달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하루가 있으면 그 날은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다 기적의 날이라고....

 

 

그가 내 곁을 떠나면 옛날로 돌아가 길가에 쓰러져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그는 내 구박에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그의 누나나 동생은 그에게 내 곁을 떠나면 안 된다고 말한단다. 그러면서 자기네들 집에는 오지 못하게 한다. 술 먹고 행패 부릴까 봐서... 

 

 

나는 알콜을 해독 할 수 있는 식품을 연구를 하고 그에게 마시게 하고 때론 강압으로 때론 협박으로 그에게 술 마시는 기회를 점점 박탈해갔다. 그의 술친구들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조금씩 나아져서 한 달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지금은 몇달을 술 없이도 산다. 술을 누가 사 주지 않는한 나에게 술값 달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그를 지키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여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장장 십육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해서 거의 정상에 가깝게 그를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나에게서는 환자로서 내 옆에 살았다.


그렇지만 내가 그에게 가한 언행이 그를 때로는 아프게 하고 자존심 상하게 했으리라. 나는 그에게 옷도 해주고 머리도 깍아 주고 건강식품도 만들어 주지만 각방을 사용하도록 강요했고 오래 전부터는 내 옆에 가까이 오는 것이 싫다. 술과 담배에 쩌든 그의 몸에서는 이제 나이 들어 나는 냄새까지 섞여 풀풀 난다. 냄새가 난다고  향수를 뿌리는데 조금 후는 그 냄새까지 혼합하여 이상한 냄새로.......


한번 알콜중독에 걸린 사람은 완전히 낫는 법은 없다. 십년을 술을 입에 대지 않더라도 한번 술을 대서 며칠을 계속하면 옛날로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항상 술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의지력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주위의 친지들은 술을 권하는 대신 술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이제 나는 그가 내 곁을 떠나서 자신의 소질을 살려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관음보살과 반야심경을 쓰면서 여생을 보냈으면 싶다. 속진 세상에서는 술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고 그냥 아까운 재주를 썩히고 그의 일생을 마감 하기엔 나의 그 동안의 노력이 아쉽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으면 무언가를 남기고 가야 할 것이 아닌가. 더욱이나 그에게는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생물학적인 유산은 남기지 못하였으니 이제 좋은 그림을 남겨 사회적인 유산을 남기는 일에 몰두 하였으면 좋겠다. 그가 남긴 그림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면 그 또한 이 세상을 살았던 보람이지 않겠는가. 그가 좋은 길을 찾아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그가 떠나고 내가 자유를 찾을 때 나는 많은 책을 보고 연구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쩜 그가 죽는 날까지 내 소망은 이루어 지지 않고 나는 자유를 찾지 못하리라. 그는 알콜로부터 해방 된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마지 못해 참고 있는 것이기에 언제 누가 술을 주겠다고 불러 내면 달려나가 다시 옛날로 돌아 갈 것이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하고 쥐를 무서워 하고 귀뜨라미가 밤에 뛰어나오면 모두 잠든 밤에 소리를 질러 모두를 깨우고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의 재주가 아깝다. 그의 붓글씨가 아깝다.

 

 

2005년 9월 20일  林 光子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