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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99세에 저승 가신 큰어머니의 49제

by 임광자 2010. 1. 3.

99세에 저승 가신 큰어머니의 49제


오늘 100세를 두어 달 앞두고 99세에 저승에 가신 큰어머니의 49제에 다녀왔다. 추위가 다시 찾아와 오늘 기온이 뚜~욱 떨어진다는 예보로 인하여 두꺼운 옷을 입고 목이 길게 올라 온 털신을 신고 눈밭에서 뒹굴어도 춥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완전무장을 하고 데리러 온 사촌동생의 차로 신림면 궁평에 갔다.

 


 

신림 저수지를 옆으로 끼고 신평교를 지나 쭉 뻗은 한길로 달리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궁평 마을로 가는 표지석이 서 있고 오른쪽 조금 멀리에는 할아버지 공덕비가 한길까에 우뚝 서 있다.

 


궁평 마을로 접어들자 오른쪽에 작은 소나무 숲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논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여름날 피서지로 톡톡히 더위를 식혀 주었을 정자가 아름다운 소나무를 끼고 삭풍에 부딪기며 의연하게 서 있다. 지금은 네 기둥 사이로 동서남북의 바람들이 유희를 벌여 걸터앉기도 주저된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궁평 마을은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 보다는 훨씬 컸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마을에서 자라다가 결혼을 하여서 외가와 친가가 궁평에 많이 살아서 설날에 세배를 하러 다니면 하루에 끝나지 않고 이틀이 걸렸다. 지금은 많이 동네를 떠나 빈집들이 헐리고 빈터로 군데군데 남았다.

 


궁평 마을의 마을회관 겸 경로당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젊은이는 모두 도시로 나가고 나이 드신 노인들만 마을을 지키며 외로울 적엔 이곳에 와서 서로의 마음을 보내고 받으며 쓸쓸함을 달래고 동네 살림 이야기로 세월을 엮어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고향 떠난 젊은이들 나이 들면 도시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 와 궁평 마을에 친척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렸을 적 궁평 마을 앞에는 사각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던 바가지 공동우물이 있었다. 사각 둘레가 길어서 동네 여인네가 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워도 넉넉했는데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자 필요 없게 되고 가뭄에 지하수를 퍼 올려 농사를 짓다보니 우물이 말라서 메우고 그 자리는 동네 주차장의 일부가 되었다. 우물의 서쪽으로는 미나리꽝이 있었다. 그런데 우물터가 메워져 없어지는 것이 섭섭했는지 그 부분이 꺼져서 주변보다 들어갔다. 아마도 우물 아래 흐르던 지하수가 말라가면서 지반이 내려앉았나보다. 그 자리에 잠시동안서서 추억에 잠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던 웃음소리가 깔깔깔~~귓전을 맴돈다.

 


사촌오빠 집에 들어서서 모두들 모였다. 서울서는 막내아들이 형수들을 모시고 내려왔다. 형들은 직장에 매여서 못 내려왔단다. 세삼 풍속의 변함을 느낀다. 지금의 49제는 옛날의 탈상에 준하는데 자손이 안 내려왔으니 말이다. 처음에 국민의례준칙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싶게 준수한다.

 


큰집의 북쪽 옆구리 방에서 육이오 때 피난살이를 하였다. 아무 것도 없이 읍내에서 우르르 와서 곁방살이를 하면서 큰집에서 양념 등을 많이 얻어먹었던 생각이 난다.

 


큰어머니 방안 제사를 간략하게 지내고 다시 산소에 가서 지낸다고 한다.


착하고 착한 큰어머니는 동서들과 화합을 잘하고 살아서 49제 날씨도 좋다. 포근하고 청명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데도 편안하다. 조용조용하고 부지런하고 생색내지 않고 동서 간에 우애가 깊어 친 자매들 보다 더 살갑게 살았던 큰어머니들과 작은 어머니들, 이제는 다 저세상 사람들이다. 하늘 보다 바다 보다 더 컸던, 그 오지랖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장례 때도 49제때도 날씨가 참 좋다.

 

 

 

 


산소로 가는 길엔 눈도 다 녹고 마른 낙엽이 가는 길에 카펫이 되어준다. 대나무 숲을 지나고 소나무 숲을 지나자 분지가 나타난다.


 

간단하게 차례를 지냈다.

큰어머니! 저승에 가서라도 살아생전처럼 우리들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큰어머니는 큰 병치례없이 99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지 3일만에 목숨줄을 놓으셨다. 자식들 다 건강하고 극진한 효도받고 천수를 누리시다가 가셨다.


2010, 01.03.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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