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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단숨소설59: 청량산 문수사에 가다.

by 임광자 2007. 11. 13.

 

 

 

단숨 소설 59: 청량산 문수사에 가다.

 


11월 11일에 고창에 내려가는 길에 아예 생활 생물 연구소를 추진하고 운영하는데 총대를 메겠다는 풍죽헌을 만나려고 쪽지를 띄웠는데 무소식이다. 메일을 띄웠는데도 무소식이다. 할 수 없이 <고창 사람들> 카페에 공개 데이트를 신청하는 글을 올렸다. 11월 11일 저녁때 고창에서 카페지기 민의회님과 풍죽헌을 만나고 싶은데 시간을 내어 줄 수 없느냐는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풍죽 헌 님은 선운사 어디 절로 들어가서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하고 도(?)를 닦는다는 김 처사님의 댓글이다. 그러면서 손전화 번호를 가르쳐주는 쪽지가 날아온다. 손전화는 하지 않고 보고 싶으니 전해 달라는 답글만 달았다. 그리고 민의회님은 시간을 내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두 사람과 의논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라서 조금 거시기 하지만 할 수 없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풍죽헌의 댓글이 올라온다. 고창에서 너무 떨어져 있는데 딱 한 달 동안만 도(?)를 닦겠단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민의회님과 상의를 하란다. 그러겠다고 답글을 올리고 있는데 풍죽헌의 쪽지가 날아온다. 보살님에게 하루에 1시간 인터넷을 쓰기로 하고 그 대신 맛있는 것 사주기로 하였단다. 하! 도 닦으러 간 사람한테 인터넷을 구걸(?)하도록 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궁금하겠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척 궁금하겠지.

 

민의회님이 검단선사와 함께 나타난다. 검단선사는 처음 본다. 생활생물 연구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방을 구한다고 하니 검단선사가

 

“고창에서는 아리랑모텔이 인터넷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요일이라 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숙박료는요?”

“하루에 삼만오천원”

“되게 비싸네요. 그렇지만 우선 인터넷을 할 수 있다니 그리로 가야겠네요.”

“지금 내가 나가야 하니 가서 알아보고 연락하지요.”

 

검단선사가 나가고 나서 얼마 후에 방을 예약했다고 연락이 왔다. 민의회님이

 

“문수사에 안 가볼래요?”

“너무 늦지 않았나요?”

“일곱 시까지 모텔에 도착하면 되니까 갔다 와도 됩니다.”

“그럼 가 볼까요. 문수사를 여고시절에 소풍을 가고는 그 후로 못가 보았는데요.”

 

내가 청춘 시절에 책만 본다고 아버지는 그러다가 폐결핵에 걸린다고 틈만 나면 문수사에 갔다 오자고 하시는 걸 한 번도 함께 가지 않았다. 나는 책 보다 심심하면 울안에 있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농수로인 도랑에서 물고기 잡는 것으로 정신통일을 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다. 오직 책만 보면 되었으니까. 그 당시에 내가 십 원씩만 주면 동생들이 세숫물도 떠나 주고 신문도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가장 길게는 5개월 동안 대문 밖을 나가지 않고 살았다. 밥도 어머니가 다 해 놓으면 내가 반찬 몇 가지와 밥을 갔다 내 방에서 먹었는데 모두를 넣고 비벼 먹는 것이 가장 편했다. 그 버릇이 지금도 이어져서 비빔밥을 좋아한다.  더우면 수건에 물을 적셔서 목에 걸고 책을 보았다. 신통하게도 건강은 좋았다. 지금은 그렇게 오래도록 방 안에서 책을 보지 못한다. 답답해서 중간중간에 나가서 휘 한 바퀴 집 주변을 돈다.

 

“청춘시절에 아버지가 문수사에 갔다 오자고 많이 하셨는데 오늘 가네요.”

 

민의회님의 차로 달리니 금방 문수사다.

나는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었다.

 

 

 

 

 

 

 

 

 

 

 

 

 

 

 

 

 잘 보면 위에서 세 번째 줄에 작은 글씨로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절이 있다는 글자가 보인다.

 

 

여기 물맛 아주 좋다.

 

 

 

저기 양은솥이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었다면 더욱 운치가 있을 터인데. 양은이라서 비 맞아도 녹이 슬지 않으니 그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지붕을 하고 가마솥이라면 건강상으로는 더 좋을 것 같다. 

 

 

 

 

 

 

 멀리서 민의회님이 보인다.

 

 

 

읍내에 와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란다. 콩나물국밥이 맛있다고.. 콩나물 국밥을 잘 먹었다. 오늘 민의회님이 돈을 많이 쓴다. 찻값에 밥값에 나중에 받겠단다.

 

모텔에 도착해서 검단선사 이름을 대고 예약한 방을 물으니 000호실이란다. 숙박료를 물으니

 

“4만 원이요.”

“3만 5천 원이라고 하던 대요.”

“4만 원”

“인터넷 되나요?”

“되는 방이 있고 고장 난 방이 있어요.”

“지금 빈방은 그 방 밖에 없어요.”

“제가 가서 봐 줄까요?”

 

민의회님이 인터넷이 되는 가를 알아봐 주겠단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방에 와서 가지고 온 노트북을 연결하니 안 된다. 한참을 생각하니 서울에서 하나로 통신을 사용하였으니 시골에서는 안 되는 거다. 아이고 이 머저리 왜 그걸 생각을 못하고 무겁게 지고 왔는고????? 카메라 사진을 어떻게 올리지 걱정하고 있는데 민의회님이

 

“이방 컴퓨터가 되니까 다운로드하여서 사진 올릴 수 있어요. 해 드릴게요.”

 

 얼마나 고마운가. 서울에서는 조카들이 해 주어서 그냥 사용을 하였는데 하! 고창에 오니 또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네 하느님! 범사에 감사!!!!!!!!!

 

민의회님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다 해주고 갔다. 너무너무 고맙다.

 

인터넷을 하다가 대조영을 보다가 그렇게 하룻밤이 저물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지적공사에 전화로 경계측량 신청을 하니 기다린단다.  며칠이 걸린단다. 일단 서울로 올라오기로 하고 밖으로 나오니 생판 모르겠다. 사무실로 와서 터미널에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으니 택시를 부르란다. 멀단다. 걷겠다고 하고서 걷는데 배낭이 너무 무겁다. 오다가 빈 택시를 불렀다. 기본요금 2천 원이면 터미널에 간단다. 고창에는 택시제도가 참 발달되었다. 관광객이 많아서다. 어디서든 전화를 하면 달려오고 읍내는 기본요금이다. 여러 명이 타면 아주 기분까지 좋다. 싸니까...

 

서울에 도착해서 <고창 사람들> 카페에 들어가니 풍죽 헌이 연락을 받았나 보다.

 

“행정적인 문제는 미비하지만 그런대로 된 것 같고 설계도 짤 때부터는 열심히 돕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고창 사람들과 함께 생활 생물 연구소의 탄생과 사단법인을 만드는 일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빛나는 활동을 하렵니다.

 

 

林光子 20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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