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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여왕의 푸념

by 임광자 2011. 1. 21.

 

 

 

여왕의 푸념


앞집에 놀러 가면

상황버섯차, 홍삼차, 녹용차 등등.

소문만 듣던 차를 가끔씩 얻어먹고

때론 양파즙, 청둥호박즙, 복분자즙, 배즙

하루 종일 몸에 좋다고 소문 난 것들을

입에 달고 산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을 때도

무슨차니 즙이니 하는 것들과 함께 먹는다.

“아줌마! 약은 맹물에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서서 식사하지 말고 편안하게 앉아서 드세요.“

“약을 몸에 좋은 것과 함께 먹어야 더 좋지.”

“약 성분과 상극인 것과 먹으면 약효가 떨어져요.

약이 물에 녹아야 흡수가 잘 되어요.

농도가 너무 진하게 드시면 약이 잘 녹지 않아

흡수가 덜 되어요."


아줌마는 수술을 여러 번 하고

몸이 좋지 않아서

허리를 구부리기도

무거운 것을 들지도 못하고

많이 걷기도 힘들어

청소도 김치 담는 것도

할 수가 없어도

아저씨는 여왕처럼 받든다.


아저씨는 농사철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논밭에 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자정 무렵 구둣가게에 와서

아줌마가 수선할 구두 받아놓은 것을

고치고 나면 새벽 두세 시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서

씻고 먹고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아저씨는 일을 즐긴다.

많은 논밭을 혼자서 짓는다.

가만있으면 몸이 근질거리고

일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술이나 먹고 화투나 쳐서

돈만 잡아먹을 거란다.

맞다! 몇 명씩 떼를 지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아저씨들이 있다.


어느 날 아저씨와 아줌마가 함께 있던 날

“아줌마는 여왕이야! 고급은 다 드시고

모든 일은 아저씨가 다 해주니 시집 잘 갔어요.“

내가 말하자. 아줌마 얼굴색이 변한다.

얼굴모양이 조금 찌그러진다.

“내가 여왕이라고? 내가 젊어서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데...


시누이들과 같이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농사일을 다하고 가게에서 일하고

정신없이 일해서 시동생 시누이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아들딸들 다 가르치고

결혼 시켰는데...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려고

초가지붕에서 내린  썩은새 때느라

먼지를 얼마나 뒤집어썼는데...

맵저(왕겨)를 풀무질하며 때다가 바람이 거꾸로 불면

아궁이속 불길이 나와 얼굴을 덮치면

앞 머리카락이 탔어.


아저씨는 겨울에도 낮에는

논밭에 가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잠깐씩 가게에서 구두 수선을 하고

아줌마 혼자서 성경을 보며

손님이 가져온 수선품을 받고

수선해 놓은 것을 내 주고

가게를 지킨다.


오늘 가게에 들르니

성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옛날이야기를 한다.

어려서 소나무 껍질 벗겨 먹고

쑥을 무지하게 많이 넣고 서숙 조금 넣어

쑥떡을 해 먹던 이야기.

“질룩이도 참 많이 먹었제.”

“질룩이요? 그게 뭐죠?”

“가시가 많은 나무. 하얀 꽃피고

지금도 모양성 앞 국악당 뒤에

그 나무 있더만.“

“찔레꽃이요?”

“맞아 찔레꽃. 새순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씹어 먹었어.“


아줌마는 아저씨 앞에서

지금 여왕 대접 받는다는 말이

시집 잘 갔다는 말이 

마음에 많이 거슬렸나보다.

아줌마가 아프게 되어

일을 전혀 못하게 된 것은

젊어서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못 먹어서 그렇다는 설명을

하고 싶은 거다.


정말이다.

아파서 여왕 대접 받는 것 보다

건강해서 일 잘 하는 마누라 되는 것이

소원일거다.


그런 아줌마에게 직접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말한다.

“아줌마! 

몸 이곳저곳 수술도 많이 하고

불편한 몸이지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지금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해서

오래 오래 아저씨 곁에서

여왕 대접 받으며 사세요.

기도 할게요.“


2011.01.21.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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