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산다
어제는 고창 장날이다.
해질녘에 장으로 가서 구경하노라면 좌판에서 하는 떨이가 걸린다.
나는 시골에서 농사를 직접 지어서 장날이면 좌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를 단골로 두고 있다.
오늘 양파를 사려고 했는데 단골들은 이제 금년 양파 농사지은 것은 떨어졌으니 마트에 가서 사 먹으란다.
나 보다 훨씬 나이가 더 드신 할머니가 벌려 놓은 좌판을 보니 서리태가 있다. 그런데 속이 덜 푸르다. 콩 하나를 이빨로 잘라보니 겉은 연녹색인데 속은 누렇다.
-속이 덜 녹색이네요?-
-내가 농사지은 거야. 다른 것도 깨물러 봐!-
하면서 하나를 골라 깨물어서 속을 보여준다.
-이거 한 되에 얼마예요?-
-육천원.-
-두되에 만원에 주세요.-
-한 되만 사. 나머지는 가지고 가서 내가 먹으란다.-
-그냥 두되에 만원에 주세요.-
-집에 서리태가 없어. 내가 돈 욕심으로 가져왔거든.-
-그럼 두 되 주세요?-
할머니가 되를 꺼내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 작은 바가지를 내놓는다.
-할머니! 그게 되예요?-
-이게 되 보다 더 많이 들어가.-
나는 그냥 그 플라스틱 바가지로 두 되를 사서 비닐봉지에 담고서
-정말 만원에 안 줄래요?-
-안 되야!-
내가 만 이천 원을 주자. 나머지 서리태를 보더니
-그냥 다 가져가고 만 오천 원 내!-
-그럼 할머니는 서리태 못 드시지 않아요?-
-안 먹지 뭐. 그냥 니나 먹으라.-
-그래도요.-
-니하고 나하고 그럴 사이냐. 그냥 니나 먹어라.-
아무리 보아도 나머지가 한 되는 될 성싶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냥 그걸 반값에 나에게 떨이를 하는 거다.
서리태 봉지가 제법 무겁다.
이 구경 저 구경하며 걷다가 단골 생선 좌판 앞에서 구경 하는데
-이거 한 무더기에 만원씩인데 두무더기에 만원을 주세요!-
-제가 살게요.-
파장이 되어 가면 생선가게에서는 잘라 놓은 것이나 배를 갈라놓은 것은 반값에 떨이를 한다. 하나 무더기는 아구 4마리를 배 갈라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물매기 4마리를 놓은 것이다.
-물매기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어요?-
내가 아주머니에게 묻자.
-콩나물 넣고 무 탁탁 썰어 놓고 된장 살짝 풀어서 국 끓이면 맛있어요.-
더 떨이 할 것이 없나 이것저것 보는데 아저씨가 삼치무더기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삼치 만원인데 칠천 원만 내고 가져가요?-
-에이. 나는 아까처럼 반값으로 팍 깎아야 사지. 오일 후면 또 장이니까 다음에 살게요.-
서리태와 생선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오는데 딥다 무겁다. 낑낑 거리며 집에 와서 얼른 내려놓고 부리나케 다시 시장으로 가서 젊은 아주머니 단골에게 갔더니 벌써 짐을 다 챙겨서 트럭에 실었다. 더 가서 다리 위에서 팔고 있는 할머니 단골에게 가니 아직 짐을 덜 쌌다.
-이거 무 한 다발 얼마에요?-
-으잉. 그거 삼천 원만 내.-
비닐봉지 안에 흙이 묻은 무를 넣고 잎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앉고서
집에 와서 무 다발을 선선한 가마솥 부뚜막 위에 놓았다.
-오늘 횡제를 했네. 그래 이 맛에 산다.-
사온 생선을 큰 접시에 담아서 사진을 찍었다.
시장 옆에 살면 떨이를 자주 할 수 있어서 식비가 적게 든다. 또한 냉장고가 클 필요가 없다. 언제든 금방 가서 싱싱한 것을 사 먹을 수가 있다. 이제 공터로 노점상이 들어오면 더 자주 떨이를 할 수 있을 거다.
林光子 2008년12월04 일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들과의 행복한 눈 맞춤 (0) | 2009.04.06 |
---|---|
오늘 서울 갑니다. (0) | 2008.12.20 |
가상의 세계 (0) | 2008.12.02 |
삼동파(三冬파)를 얻고 싶다. (0) | 2008.11.23 |
매력님과의 즐거운 데이트 (0) | 2008.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