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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고창노인복지관

94살 할머니의 세상 살아가기

by 임광자 2014. 11. 18.

94살 할머니의 세상 살아가기

 

내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몇 살이여?”

일흔 셋.”

그런데 왜 머리가 하해?”

할머니는 몇 살?”

88.”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3년 전에도 88. 할머니는 나이를 안 먹어?”

할머니가 빙긋이 웃는다.

할머니와 한 동네 사는 할아버지가 할머니 나이가 94.”

할머니는 그냥 웃기만 한다. 할머니는 94살이지만 흰머리가 몇 안 되고 검은 머리다.

할머니는 머리카락은 검지만 얼굴은 주름투성이에 검버섯이 가득하잖아요. 나는 머리카락은 희지만 주름도 없고 검버섯도 없잖아요.”

나죽으면 차타고 와서 구경해. 내가 아들 여섯, 딸 다섯을 낳았어. 아들 딸 짝에다 손주 증손자가 다 올 거여.”

복 많으시네요. 모두 다 잘 살아서요. 아이들 이름은 기억해요?”

다 몰라. 부산에 아들, 익산에 딸, 서울에 아들이 살아. 부산 사는 아들은 미국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들어왔어. 미국에는 손자들이 살아.”

미국도 가 봤겠네요?”

영감하고 비행기 타고 같이 갔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할아버지도 복지관에 오시라고 해요.”

영감은 몇 년 전에 저 세상에 갔어.”

"그러셨어요."

나를 꼭 데리고 다니곤 했어. 구경 많이 다녔지.”

할머니는 누구와 살아요?”

큰 아들이 서울서 살다가 내려와서 농사짓고 살아.”

효자네요.”

효자지. 땅이 있으니 농사짓고 살아. 땅이 없으면 먹고 살게 없어 내려오기 힘들지.”

 

하루는 복지버스가  복지관  가까운 정거장에 정차하자 한 할머니가 올라온다. 그 할머니를 보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팔을 쭉 뻗어 그 할머니에게

반갑네. 여기서 탔어?”

“....”

그 할머니는 옆의 할머니를 힐긋 보고는 모른 체 뒤로 가서 앉는다.

할머니 아는 할머니이에요?”

그럼 한동네에서 자랐어, 그런데 보면 반갑잖아. 아는 체를 해도 모른 체 하네.”

할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본다.

할머니! 할머니는 참 착해요. 남 흉도 안 보고 누가 뭐라고 해도 가만있고요.”

남 흉은 봐서 뭐해 누구나 다 흉은 있는 건데.”

다른 사람이 할머니 흉보면 어때요?”

안 보는 데서 흉보면 뭐라고 못하지 나라님도 안 보는 데선 흉보는 건데.”

할머니는 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녀?”

복지관에 하루 종일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 참 좋아. 난 젊어서도 차타고 다니는 걸 좋아했어.”

차를 많이 타면 피곤하잖아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복지관에서 요가도 배우고 그러지 그러세요?”

난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아. 차타고 다니는 것이 좋아.”

할머니는 정말 건강하다. 복지버스 첫차를 타고 막차로 집에 간다. 그 이유는 동네 할아버지의 이야기로는 아침이면 며느리가 할머니에게 복지관에 가라고 성화란다. 어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걸음마 치매에 걸렸다고 말한다. 94살이니 집안에 있으면 심심하니 무언가를 할 것이고 며느리에게는 그것이 일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할머니는 아주 옛날 생각으로 무얼 할 것이고 며느리는 최신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니 걸어 돌아다닌다.

 

오늘은 할머니가 복지관 가까운 곳에서 버스에 올라서 깜짝 놀랐다.

할머니! 왜 여기서 타요?”

버스 타고 오다가 내려서 걸었어.”

그러다가 길 잃어버리면 어쩌려고요?”

날마다 타고 다니는 길을 왜 잃어버려.”

많이 걸었어요.”

응 많이 걸었어. 어떻게 여기 정거장을 알고 찾아왔어요?”

정거장 다 알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면 헛소리가 없다. 모든 것은 정확하고 인정이 많다. 가지고 있는 것을 주기를 좋아한다.

할머니 드세요.”

이거 누가 주었어.

사탕을 까서 내 입에 넣어준다. 나도 할머니에게 사탕이나 껌을 드려야겠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서 앞좌석 뒤에 붙어있는 그물주머니에 누군가가 버린 사탕포장지나 귤껍질이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런 걸 먹으면 내릴 때 가져가야 하는데 그냥 여기 놓아두고 갔네요.”

이러면 기사아저씨가 치워줘야 하지 않아.”

복지관이 가까워 오자 할머니는 앞의 그물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는 모두 빼낸다.

할머니 그걸 뭐하려고 빼내요?”

복지관 휴지통에 넣으려고.”

할머니는 말이 없다. 그러나 말을 붙어보니 참 다정다감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고 무시하며 지레짐작을 한다. 할머니는 비록 지팡이는 짚었어도 몸도 정신도 건강하다. 할머니의 건강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생활태도에 달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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