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연 이야기

텃밭의 선물

by 임광자 2009. 7. 17.

 

텃밭의 선물


 

아침에 돌길을 걸으며 주변의 식물들을 관찰하는 것은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진순이 집 앞으로 지나는데 옆에 있는 옥수수의 수꽃 모습이 이상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옥수수 수꽃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꽃잎이 있고 암술도 달린 것 같다. 얼른 디카를 누른다.

 




돌길의 커브를 도는데 돌틈 사이로 녹색 잎이 솟아나왔다. 가까이 보니 이런 바로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생강 싹이다. 그 동안 잊고 있던 생각 하나가 실타래처럼 풀어져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렇다 나는 진순이 놀이터를 넓게 만들어준다고 생강을 심은 자리라는 것도 잊은 채 돌길을 만든 것이다. 돌 틈을 뚫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디카를 누룰 사이도 없이 호미와 꽃삽을 들고 생강 싹 주변의 돌들을 치웠다. 생강 싹을 유심히 본다. 그 동안 밟히지 않고 그대로 커준 것이 고맙다. 어쩜 이 싹 말고도 돌 밑에서 나오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을 생강 싹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안되겠다. 다시 진순이 놀이터를 조금 줄이더라도 돌길을 진순이 놀이터 쪽으로 약간 당겨야겠다. 두 줄로 된 돌의 북쪽 것은 그대로 두고 남쪽 것을 빼서 북쪽 것 옆으로 옮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돌을 옮기다 보니 나에게 아침에 녹색 싹을 보여 준 것 옆으로 두 무더기가 돌에 눌려서 하얀 싹으로 뻗어나고 있다. 흙을 털어내다가 몇 개의 싹은 부러졌다. 이제 해를 보며 녹색으로 잘 살겠지. 햇빛을 받지 못하고 백색의 싹으로 살아 갈 적에 나를 원망하였을까? 적어도 생강 조각을 내가 땅에 묻은 후에 한참 새싹을 키워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자신의 몸통 위에 돌을 올려놓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까? 미안하다. 이제라도 네가 자라서 태양을 볼 수 있으니 너도 좋겠지만 나도 기분 좋다. 열심히 광합성을 해서 가을에 생강이나 많이 캘 수 있도록 하여주렴.

 

 



 

한참 일하고 있는데 옆지기가 부른다.

-금주 밥 비벼 주어야지.-

-조금 참으라고 해요.-

오늘 정기 검진을 하러 가느라 동생은 아침을 먹지 못하고 아점을 먹으려 한 것이다. 그는 종합병원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더니 나이 들어가니 더 약해진다. 허약한 남동생을 어머니는 손가락 까닥하지 못하게 하고서는 마치 아들의 수족처럼 움직이며 살다 세상을 떠났다. 공부 하는 것 빼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그에게 채소 비빔밥을 해 주었더니 맛있다고 잘 먹어서 이때다 하고는 뱃살을 빼려면 비빔밥이 최고라고 말했다. 텃밭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서 비빔밥을 한 달 이상 해 주었다. 그에게 좀 어떠냐고 물었더니

-숨도 안 차고 몸이 가쁜 해. 혈압도 떨어졌다고 그래.-

-계속 그렇게 하면 곧 아주 좋아질 거다. 틈틈이 걸어라. 너는 먹고 자고 신문 보고 책 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니 운동 부족이다. 움직여야 근육이 발달하고 지방이 빠진다. 넌 근육이 너무 적은 것 같다. 근육이 발달해야 뼈도 튼튼하다.-


많이 좋아졌다니 기분이 좋다. 동생이 좋아진 것은 그 동안 돌보아 준 옆지기의 힘이 크다.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를 길러 준 텃밭의 힘이 크다. 나야 흙 속에 씨앗이나 모종을 넣고 박아주고 물과 거름만 주었지 채소를 길러 준 것은 텃밭의 흙이다.

 

 

 

고추밭을 둘러보니 빨강 고추가 몇 개 있다. 땄다. 지금 냉장고에는 저번에 딴 빨강고추가 있다. 모았다가 다른 양념과 함께 믹서로 갈아서 지퍼 팩에 넣어 얇게 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필요시에 조금씩 떼어서 사용할 거다.

 

 

가지 풀들이 자라는 곳으로 가니 가지가 주렁주렁 이다. 땄다. 한 끼니 반찬으로 넉넉하다. 피망 하나가 모종 때부터 달려있더니 아주 작달막하게 빨갛게 물들었다. 고명으로 사용하면 예쁠 것 같다.

 

 

오이는 며칠 전에 보니 작은 것 같아서 조금 키워서 먹으려다 오늘 보니 잎에 가려서 안 보였던 아랫부분이 노각으로 변해 있다. 가는 부분인 윗부분만 보고 더 크면 먹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호박잎은 포도나무가 올라가는 아치에 올린 것을 오늘 뽑아버린 호박 풀에서 딴것이다. 방울토마토와 호박넝쿨이 아치를 점령하다시피 하니 포도 넝쿨이 기를 못 쓰는 것 같아서 호박 풀을 제거해 버렸다. 덕분에 호박잎쌈을 하고 어린 순이랑 나이 든 잎의 잎자루는 된장찌개를 해 먹을 거다.

 

오늘은 이만 따야겠다. 텃밭은 사랑해 주는 것만큼 날마다 무언가를 선물한다. 어디 텃밭 뿐이겠는가? 세상사가 다 그렇지. 그래서 주고 받는다고 하잖는가?


내가 옆지기 방 앞의 호박넝쿨을 제거하는 것을 보던 옆지기는 방울토마토 풀이 심어진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에 동백나무 한그루 심어 줘!-

-웬 동백나무?-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예쁜 꽃이 피잖아. 꽃도 잎도 겨울에 볼 수 잇어 좋고, 훗날에 사람들이 내가 심은 동백나무라고 기억 하라고. 그리고 방문을 열었을 때 밖에서 방 속이 안 보여서 좋고.-

-나중에 여기에 현관을 만들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해 봐야 하니까 방문 앞에 동백나무 하나 심어 줘.-

-동백나무를 사려면 내년 봄에 사서 심어야 해요.-

-그럼 내년 봄에 한그루 심어 줘. 내 자식으로 알고 돌볼 테니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옆지기는 식물을 가꿀 줄을 전혀 모른다. 채소인지 풀인지 물을 어느 때 주어야 하는지 거름을 어떻게 만들어 주는지 완전 깜깜이다. 그런 사람이 동백나무를 돌보겠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동백나무는 나도 좋아한다. 정말 내년 봄에는 작은 동백나무 사서 심고 꽃을 보아야겠다. 전지를 잘해서 키가 크지 않고 아담하게 자라도록 해야겠다. 전지는 옆지기도 잘 할 거다.

 


林 光子 2009.07.17.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