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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고창노인복지관

“40~50줄에 간 친구들이 불쌍해!”

by 임광자 2015. 10. 4.

“40~50줄에 간 친구들이 불쌍해!”

 

식당 앞 긴의자에 앉아서 식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주름 가득한 할머니와 이야기꽃이 피었다.

 

할머니는

 

이런 좋은 세상 못살고 50줄에 간 친구들이 너무 불쌍해. 그 친구들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는 데요?”

내가 실은 88인데 호적에 4년이나 늦게 올려 이제 84세야. 옛날에는 어려서 많이 죽어서 댓살 먹으면 호적에 올렸어."

친구들이 죽은 때가 지금부터 30~40년 전이네요.”

아마 그 보다 더 일찍 병원 한 번 가지 못하고 죽은 친구도 있어.”

아픈데도 병원에 못가요?”

돈 없는데 어떻게 병원 가겠다고 해. 버스 한 번 타 보지 못하고 장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죽은 친구들이 수두룩해.”

“70년대부터는 경제가 좀 풀렸지 않았나요?”

어떻게든 새끼들 가르치려고 허리를 졸라맸지.”

그렇다고 장날에 장에 한 번도 못가 봐요?”

장 구경 한 번 가보면 좋겠다던 친구가 쓰러졌는데 그냥 며칠 앓다 죽었어.”

지금은 복지버스가 각 면을 다 돌아서 공짜버스로 복지관 와서 점심 먹고 110분차로 읍에 나가는 걸 타고 군청 앞에서 내려서 병원도 가고 약국에도 가고 장도 보고 다음 차를 타고 복지관으로 와서 집에 가는 복지버스타고 가면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리는 늙어서 차를 잘못 탈수도 있는데 복지버스만 타면 되니까 참 좋아. 그 뿐인 줄 알아. 나라에서 한 달에 20만원씩 돈도 나오잖아.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필요한 것 있을 때 애들한테 손 벌리지 않아서 참 좋아.”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옆의 할머니가

 

내 운동화 이쁘지. 우리 아들이 5만원 주었대.”

그까짓 운동화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사 신으면 되는데 뭘 그걸 자랑이라고.”

나는 나라에서 나오는 돈 내가 못썼어.”

왜.

아들 통장으로 받는데 달라고 할 수도 없어. 지도 필요한데가 많을 것 아녀. 이렇게 필요한 것은 사 주어.”

손자 봐준다며.”

손자 봐준다고 사준 거여. 내가 물려준 것도 없으니까 지가 찾아 써도 괜찮아. 그거라도 있어야 내가 떳떳하지.”

맛있는 것도 못 사 먹잖아.”

복지관 나와서 점심만 먹어도 좋지.”

 

나는 이야기를 돌리려고 주름 가득한 할머니에게

 

내년이면 호적 나이로 85세가 되니 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어 좋으시겠어요.”

 

고창노인복지관에서는 호적 나이로 85세가 넘으면 점심이 무료이고 줄 서지 않고 일반인 보다 먼저 11시30분이면 그냥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직원이 무료로 받은 식권을 가져간다. 안내실에 열린 작은 창문에 회원증을 내면 식권을 살 수 있다. 85세 이하 회원은 1,500원이다. 만약에 회원증이 없으면 무조건 2,000원이다. 식권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나이 먹는 것 싫어. 돈 내고 먹을 때가 좋지,”

할머니 옷이 참 예뻐요.”

딸이 해다 주었어.”

효녀네요.”

내가 텃밭에다 이것저것 심어서 내려오면 주거든. 못 내려오면 택배로 부쳐주지.”

텃밭이 넓은가 봐요.”

“1,000평 되었지. 지금은 조금 벌어. 아 글씨 나더러 딸네 집에 가라고 해서 갔다 왔더니 마당 근처 텃밭을 모두 콘크리트를 쳐 버렸더라고. 왜 그랬냐고 했더니 엄니가 지난번에 무릎 수술할 때 돈이 많이 들어갔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지들 도와 준다나. 그래도 그렇지. 텃밭 농사를 살살 지으면 자식들한테 줄 것이 많은데.”

"아프면 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래도 평생 해오던거라 텃밭에 가야지 살맛이 나."

자녀가 몇이나 되세요.”

“8명이여. 옛날엔 참 많이 낳았어.”

마당이 넒어져서 곡식과 고추 널기 좋겠어요.”

“암. 고추 널기도 좋고 곡식 널기는 정말 좋아. 그런데 뭘 심지를 못하니 가을이면 섭섭해.”

할머니 연세에는 농사 많이 지으면 아파요.”

우리 애들이 내가 허리와 무릎 아프다고 했더니 텃밭에 콘크리트를 발라서 밭농사를 못 짓게 했다니까. 지들이 돈 벌어서 사 먹는다면서.”

 

할머니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금방 시간이 지난다. 1150분 일반인을 위한 식당 문이 열렸다. 우린 일어나 줄을 서서 식권을 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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