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체여행 소화계(구)

8회, 왜 고기를 먹으면 속이 든든해요?

by 임광자 2009. 2. 5.

 

소화계: 8회, 왜 고기를 먹으면 속이 든든해요?

 


여명이 아버지는 군청색 양복을 좋아 한다. 군청색은 어떻게 보면 바다를 연상시킨다. 천에 있는 엷은 무늬가 깊고 푸른 바다의 파도를 느끼게도 한다. 양복 안에는 할머니가 떠 주신 군청색 털실 조끼를 입는다. 겨울에는 목을 따뜻하게 해야 감기에 덜 걸린다며 폴라 티를 입는다. 검정 큰 가방을 어께에 맨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끈의 가운데를 걸치고 등과 가슴을 사선으로 달려서 왼쪽 허리쯤에 가방이 매달리게 맨다. 이렇게 어깨에 멜 수 있게 긴 끈이 달린 가방을 크로스 가방이라고 부른다. 크로스 가방을 메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이 있으면 두 손이 자유로워 책을 보기가 쉽고 속에 있는 것을 꺼내기가 편리하고 급히 일어나도 잠간 졸아도 가방을 놓고 내리는 일이 없어서다. 금요일에는 배낭을 메고 출근한다. 배낭 속에는 속옷과 여진이에게 줄 선물과 외갓집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서 넣어가지고 간다.


여명이 엄마도 군청색 옷을 좋아한다. 다른 선생님들은 추워도 치마를 즐기는데 여명이 엄마는 내복에 바지를 즐긴다. 그건 할머니의 바람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늘 하체가 따뜻해야 혈액순환이 잘되고 늙어서 여기저기 아픈 것이 없다고 여명이 엄마에게 말해왔다 그래서 처녀 때는 짧은 치마를 좋아했지만 아이 둘을 낳고서 할머니의 말에 따라 하체를 따뜻이 하니 우선 피로가 덜 오고 겨울에도 약간 땀이 나니 기운이 더 나는 것 같다며 그렇게 한다. 여명이 아빠처럼 엄마도 크로스 가방을 메기를 좋아하고 역시 친정에 가는 금요일에는 배낭을 멘다. 그래서 여명이 아빠와 엄마가 함께 걸어가면 마치 유니폼을 입고 가는 것 같으면서 커플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오늘은 금요일. 여명이 엄마와 아빠가 외갓집에 가는 날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전화로 할머니에게

-어머니! 저희들 잘 다녀 올 게요.-

라고 보고만 하고 떠날 건데

-여명이와 유정이 데리고 평창동 사거리 갈빗집으로 나오세요.-

전화를 하고는 끓는다.

실은 어젯밤에 여명이가 엄마 아빠에게

-친구들이 그러는데 사거리 갈빗집에서 갈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데요. 우리도 거기 한번 가서 먹어요. 애들이 그러는데 저녁에 갈비를 먹었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뱃속이 든든했데요. 저도 정말 그럴까요?-

-그래 우리도 한번 가서 먹어보자. 실은 나도 그 집 갈비 맛이 좋다는 걸 들어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여명이 아빠가 말하고는 여명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침에 아빠는 출근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오늘 저녁에는 저희들이 모실 테니 저녁 준비하시지 말고 전화를 기다려 주세요.-

할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명이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할머니와 여명이와 유정이가 버스를 타고 북악터널을 지나서 평창동으로 간다. 사거리에서 내려 금방 갈빗집을 찾았다. 입구에서 여명이 부모와 만나서 다섯은 예약된 자리에 앉았다. 냄새가 죽인다.

테이블 앞에서 준비된 갈비가 지글지글 소리를 낸다.

할머니는

-너희들 너무 먹지 마라. 과식하면 알지?-

여명이와 유정이를 번갈아 보며 미소를 보낸다.


여명이네 집 식단은 담백한 반찬 위주로 짜이고 식물성이 많고 잡곡밥이다. 그래서 기름진 음식은 이렇게 일 년에 몇 번 외식을 할 때 먹는다. 여명이와 유정이는 기회를 만난 듯이 잘도 먹는다. 둘이 먹는 것을 보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이야기가 틀린 것 같다. 걸신들린 듯이 잘도 먹는다. 밥도 먹지 않고 고기를 먹는다. 다행이 그 집에서는 미나리 무침이 나왔다.

-얘들아! 미나리 무침을 먹으면서 먹어라!-

여명이와 유정이를 보고 할머니가 말한다.

-미나리 무침은 집에서도 가끔씩 먹잖아요.-

여명이 말한다.

-지금 고기에는 지방이 너무 많다. 미나리 속에는 지방을 분해시키는 물질이 있어 함께 먹으면 좋다.-

-할머니 내일 아침 반찬으로 냉동실에 들어있는 질경이 무침 나오겠네요.-

-아하! 맞다 맞아 그럴 참이었다.-

할머니가 말하자 유정이

-질경이는 지방을 분해하니 기름진 것을 먹을 때는 반찬으로 먹으면 좋다이.- 라고 할머니가 늘 하던 말투를 흉내 낸다.

할머니가 둘을 보고 웃는다.

-내가 말하면 정신없이 먹기만 하더니 이제 보니 다 듣고 머릿속에 넣었구나!- 하고 말하며 그래도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해 주는 손주들이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그대로 밑으로 다 새지만 콩나물은 자란다면서요?-

여명이 아버지가 할머니를 보면서 말하며 웃는다.

-맞다 맞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 태도일 때 네 아버지가 그만 말하라고 그랬다. 그럼 내가 그렇게 대꾸하고.-

-아버지는 잘 계실가요?-

-고향 친구 분들이 많으니 잘 지내실 거다. 그래도 고향에 가셔 건강하시잖니.-

-자 어서 먹자-

할머니가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얼른 화제를 돌린다.


밖으로 나와서 아빠와 엄마는 외갓집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탄다.

남은 세 사람은 떠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여명이와 유정이는 볼록 나온 배를 문지르며

-정말 오랜만에 잘 먹었지?-

여명이 유정이를 보고 말하자.

-실컷 먹었더니 고기 냄새가 싫어진다.-

유정이 말하고는 배를 슬슬 문지른다.

-나 똥배 나오면 어떡해?-

-그러게 나도!-

둘이 그렇게 말하지만 정말 포식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한 표정이다.

-얘들아! 저기 버스 온다.-

할머니가 먼저 버스 앞으로 가고 둘이 따른다.


다음날 아침 여명이와 유정이 할머니에게 가서는

-우리 아침 안 먹어요.-

-왜? 쑥 된장국 끓여 놓았는데.-

-맞아 쑥도 지방을 분해한다고 하셨어.-

여명이 말하고는 유정이를 보며 웃는다.

-쑥은 지방만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관을 편안하게 해 준다.

너희들이 어제 과식을 해서 쑥 된장국으로 위장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쑥국 끓였다.-

할머니는 봄이면 텃밭에서 나는 쑥과 질경이를 뜯어서 삶아서 물과 함께 비닐 팩에 넣어서 냉동 시켰다가 겨울이면 녹여서 국을 끓인다. 질경이는 무침으로 먹는다. 삶은 물과 함께 냉동을 시키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할머니! 왜 고기를 많이 먹으면 이렇게 속이 든든해요?-

여명이 질문을 하자 유정이도

-신트림도 나지 않고 속이 편안해요.-

-그 갈빗집에서 양념을 아주 잘한 모양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계속 찾아가지.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하니까.-

-지금도 배불러요.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그냥 왜 고기를 먹으면 오래도록 배가 부를까 그것이 궁금해요?-

여명이와 유정이 할머니 손을 잡고 거실의 둥근 상 앞에 앉아서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린다. 할머니가 흡족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본다. 질문을 해주는 손주들이 기특한 모양이다. 그냥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위에서 염산을 만든다고 말했지?-

-위 속에 염산공장이 있어서 신트림도 신물도 나온다고 하셨어요.-

여명이 벌써 수첩을 가져다 앞에 놓고 대답한다.

-위속의 염산은 고기를 죽처럼 삭혀 버린단다.-

할머니가 둘을 보며 눈을 크게 뜨자 둘은 놀라서

-염산이 고기를 죽처럼 만들어요?-

-고기는 단백질이 많단다.-

-(여명)그래서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살코기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유정)콩은 단백질 많아서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하셨고요.-

-위액 속에는 단백질을 토막 치는 효소가 있어.-

-(유정)단백질을 자르는 효소요?-

-생선을 토막 치듯이 탁탁 잘라 작게 만들지.-

-(여명) 우리가 씹는 것 처럼요?-

-입에서는 치아가 음식을 토막 치지만 위에서는 단백질 효소가 토막 치지.-

-(여명) 그럼 단백질 효소가 바로 위속의 이빨이네요.-

-그런데 그 단백질 효소가 말이다. 염산이 있어야 단백질을 토막 쳐.-

-(유정) 분쇄기처럼 전기가 들어가야 부수듯이 염산이 있어야 단백질을 토막 치는군요. 염산이 단백질 효소를 일하게 만드니 바로 전기 같은 거네요.-

-그래. 그리고 위는 자기에게 일거리를 주는 음식이 들어오면 오래 머물도록 한단다.-

(여명) 맞아요. 물이 들어가면 할 일이 없으니 그냥 내려 보내서 금방 배가 고파요.-

-위는 단백질이 많은 고기가 들어오면 바빠져.-

-(유정) 위액이 고기를 토막 치느라 신이 나서요.-

-(여명) 그래서 위는 단백질 효소를 도우려고 염산을 만들어요?-

-그렇기도 하고 또 염산은 세균을 죽인다.-

-(유정) 와!-

-우리가 과일이나 바닥에 떨어진 것을 그냥 먹어도 병에 안 걸리지 그게 다 위속으로 들어가면 염산이 세균을 죽여 버리기 때문이야.-

-(여명) 와! 염산이 좋은 일을 많이 하네요.-

-위는 고기가 들어오면 그걸 토막 치느라 신이 나서 작은창자로 통하는 위의 뒷문을 열지 않아.-

-(여명) 그럼 위가 고기를 소화시키면 뒷문을 열어요?-

-고기가 죽처럼 되면 뒷문이 열려. 그러니 고기가 죽처럼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뱃속이 든든한 거야. 생각해 봐! 자기가 할 일이 생겨 신이 났는데 그걸 그냥 뒷문을 열고 보내겠어. 위가 고기가 삭혀질 때까지 오래도록 붙잡고 있으니 뱃속이 든든한 거야.-

-(여명) 그렇군요.-

-(유정) 알았어요.-


여명이와 유정이는 놀이터로 놀러간다. 할머니는 동근 상 앞에 그대로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지우고 또 쓴다.


林 光子 2009년 2월 5일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