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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짓기

고창주민이 된 첫 날에 떠오른 추억

by 임광자 2008. 3. 5.
 

고창주민이 된 첫 날에 떠오른 추억 


오늘 고창에 도차하자마자 짐을 집에 들여 놓고는 곧 바로 읍사무소로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옆지기는 주소지를 서울에 그대로 두기로 하고 나 혼자만 고창읍에 전입신고를 하니 세대주가 내가 되고 왜 그리 홀가분한지 그냥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으로 날아갈 것만 갔다. 주민증 뒷면에 고창 주소를 적어준다. 전입신고가 옛날에는 좀 복잡했던 것 같던데 요즘에는 그냥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

 

주민등록증 뒷면. 

 

 

 

 

 


읍사무소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고창천이다. 내가 여중고를 다닐 적에는 다리가 두 군데였는데 지금은 곳곳에 다리가 놓여있다. 서울의 한강에 많은 다리가 있듯이 고창천에도 다리가 참 많이 생겼다. 다리에서 고창천을 바라보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여중고 시절에 삼일절, 육이오, 팔일오, 개천절 같은 날에는 여학교 남학교 학생들 모두가 고창 읍내의 한길을 한 바퀴 돌고는 마지막으로 고창 천의 다리와 천변을 에워싸고 만세삼창을 하면 기념식이 끝났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념식은 하지 않게 되었다. 고창 주민이 된 오늘 갑자기 다리 위에서 만세삼창을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리 위에서 몸을 돌려 동쪽을 보니 방장산이 보인다.

 

어릴 적에는 지금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지를 않았다. 트럭을 타고 다니기도 하고 달구지를 타고 가기도 하지만 그냥 걸어서 다녔다. 외갓집과 큰집에 갈 적에 한길로 가는 것 보다는 방장산을 두어 고개 넘으면 바로 외갓집이고 큰집 동네였다. 방장산을 바라보며 어릴 적에 장날 방장산을 넘으면 아는 어른들이 많았고 가다가 으름을 따 먹고 목화밭에서 달래를 따 먹기도 했다. 산딸기도 많이 따 먹고 뽕나무의 오디가 까맣게 익으면 그걸 따 먹으면 입술과 입 가장자리가 까맣게 물들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 시절 그렇게 나에게 맛있는 것을 따 주시던 어른들 모두 저 세상으로 가시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옆지기는 지난번에 너무 혼이 났는지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보일러가 고장이고 가스레인지도 없고 정말 춥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리털 바지와 잠바를 입고 왔더니 와! 따뜻하다. 물론 전기담요가 있어 바닥은 따듯하다. 옆지기의 오리털 침낭까지 두 개를 펴서 덮으니 따뜻하다. 그런데 방안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머리는 참 맑다.


밥은 하루에 한 끼를 사 먹고 나머지 한 끼는 과일과 우유를 먹을까 한다.  그리고 움직이면 살이 빠지겠다. 한번 해 보아야지. 서울에서는 집에 먹을 것이 있으니 더 먹었다. 여기서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덜 먹게 될 거다.


밤이 되어 마야출판사에서 보내준 감수한 원고를 보니 역시 생리학회의 회장님답게 구석구석 많이도 지적해주시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서울대학교 수의대 양학장님! 임상 쪽을 더 보충해서 공저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마야 출판사 사장님인 임동주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덕분에 인체 사진 좀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실제의 우리나라 사람의 인체구조의 사진이다. 위시경 검사를 했을 때 위 내부를 사진 찍은 거라든지 수술로 개복해서 보이는 간이나 쓸개를 직접 찍은 사진을 구하고 싶다. 그림과는 다를 느낌일 거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겠지. 하늘의 응답을 기다려야겠다.



林光子 200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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