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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연 출판사/단숨소설(짧은 콩트)

단숨소설52: <나그네>

by 임광자 2007. 11. 5.

 

 

단숨 소설 52: 나그네

 

오늘 날씨는 참 좋다. 산에 오르기는 아주 맑은 날씨다. 푸른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약간 찬 기운이 도는 살랑바람은 산을 오르면서 나오는 열기를 식혀 주기에 알맞다. 그래도 여전히 땀은 난다. 대로로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데 산등성이 오솔길로는 아무도 오르지 않는다. 바닥엔 낙엽이 쌓여가고 나무들은 전점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낙엽이 뿌리에 거의 내려 이불이 되어주면 찬바람이 휭휭 불어 겨울이 오겠지. 그럼 뿌리는, 봄여름 내내 자기를 먹여 살려 주었던 녹색 잎이 마지막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 온 정력을 모아서 만든 색깔 고운 자태로 자신을 덮는 흙 위에 회귀하면 포근하게 다가오는 찬란한 봄을 꿈꾸며 잠을 잘 것이다. 원래 잎은 뿌리가 흙 틈 사이에서 빨아올린 이온수를 먹고 태어나 자라서 광합성으로 만든 유기 양분으로 뿌리와 줄기와 꽃과 열매와 자신이 먹고살았다. 이제 자기를 키워준 뿌리에게 되돌아가 몇 년에 걸쳐 미생물에 의해서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날 다시 미네랄이 되어 토양수에 녹아서 뿌리 속으로 흡수되어 잎, 줄기, 뿌리, 꽃, 열매로 환생할 것이다. 잎을 떨어뜨리고 발가벗고 서 있는 나무들이 외롭게 보인다. 나무들에게서 잎은 외로움을 가려주는 옷이었구나.

 

내 등산코스의 회귀점인 대흥사로 접어드니 웬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가 낭랑하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궁금하여 대흥사 앞으로 오는데 법당 문이 활짝 열렸다. 내가 좋아하는 향불 냄새가 바람 타고 내 코를 간질인다. 법당 안에 큰 스님이 계신다. 나는 큰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주위에 있는 보살들을 보니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한 동네에서 온 신도가 아니면 모른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절구경을 좋아하지만 합장이 잘 안되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죽이고 무던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스님들이 합장을 하면 나도 합장을 해주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처님께 절을 하지 못한다.  스님들이 나를 보고 합장을 할 때 내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 그냥 보고는 웃기만 하셨다. 내가 합장을 해 드린 것은 최근의 일이다.

 

“큰 스님! 작은 스님은 안 보이시네요. 두 분 스님 사진 찍고 싶은데요?”

“어~ 오늘 산신제 드린다고 신도들과 함께 올라갔어.”

“그래서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가 났군요.”

“그래 오랜만이야.”

“오늘은 기분이 좋으시네요.”

“시골로 내려간다고 하였잖아.”

“내년에 내려가요. 가기 전에 스님 사진 찍어 두었다 대흥사 생각나면 볼게요.”

“작은 스님 내려오면 같이 찍자.”

“아주 예쁘게 찍어 드릴게요.”

“그래 기다렸다가 점신공양하고 가거라.”

“얼마쯤이면 산신제가 끝나는 데요?”

“한 시간.”

“밖에서 기다릴 게요.”

 

모르는 신도들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바깥 편상에 안 자 있는데 찬바람이 햇볕을 받지 못하는 엉덩이를 내리치고 차가운 기운이 엄습한다. 걸을 때는 더웠는데 오래 앉아 있으니 일어나 조금 걸으니 좀 낫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작은 스님 목소리가 법당에서 들려온다. 디카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가서

 

“내가 내려오시는 것을 눈 빠지게 보고 있었는데 어디로 오셨어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한다.

 

“옷 벗지 마세요. 큰스님이 작은 스님과 함께 사진 찍기로 약속 하셨어요.”

“난 뚱뚱해서 사진 잘 안 나오는데.”

“큰 스님 얼른 오세요. 사진 찍을 게요.”

 

두 분이 나란히 부처님 앞에 서신다.

 

“와 이렇게 귀찮게 하나.”

“큰스님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려고요. 블로그에 올릴 게요.”

“그래라 나 보고 싶을 때 보거라.”

 

큰스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고혈압에 당뇨가 있으시지만 기억력이 유별나게 뛰어나다. 아주 오래전에 이야기한 것도 다 기억하신다. 나는 신도가 아닌데도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정이 든 분이시다. 점심 공양을 하고 가라는 것을 모르는 신도들만 있어서 그냥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이 봐! 내가 지은 시를 읊을 테니 듣고 가라!”

 

나는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니 나를 보고는 시 한수를 읊기 시작한다.

 

“잠깐만요. 그 시 수첩에 적을래요.”

 

큰스님은 <나그네>라는 시를 읊고 나는 받아 적기 시작한다.

 

“이 시가 말이야 상도 타고 방송도 되었던 시야.”

 

 

 

<나그네>

 

오신다고 기뻐마오

가신다고 서러 마리

오실 때도 기약 없이 왔으니

가실 때도 기약 없이 가리라.

 

오고 가고 가 기약이 없으니

저 흘러가는 구름이

멈추는 곳이

바로 내 집 이리라.

               

북한산 형제봉 아래 대흥사 주지: 一心 스님 글

 

“큰 스님! 법명이 뭐였지요?”

“一心이야. 아니 벌써 잊었어! 내가 가르쳐 주었잖아.”

“맞아요. 一心이라고 하셨어요. “

“그 정신으로 무얼 한다고 나보다도 젊으면서  ㅉㅉㅉㅉ”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옆으로 걸으며 가을을 가슴에 담으며 집으로 향한다. 내년 이맘때는 이 길을 다시 걷지 못하리라. 추억 속으로 북한산 단풍이 사라 질 것이다. 나 역시 나그네 길을 가고 있구나.

 

 

林光子 200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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