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 소설 62: 중풍 맞은 할아버지가 북한산 오르는 사연
낙엽수들이 화려한 웃을 벗어 이불을 만들어 덮고 나신의 몸으로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바닥에 깔린 말라버린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산길을 오르는데 낮 익은 할아버지가 쌍지팡이를 집고 내려오신다.
“어어!~~~~할아버지!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래요. 참 많이 좋아졌어요.”
“할아버지 5년 전에는 저 아래 약수터까지 가시는 데도 하루가 걸렸어요.”
“그때는 한 발을 떼는데도 아주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발 두발 떼어 놓던 걸음이 1 년이 가고 2년이 가니까 조금씩 좋아지더니 5년이 지나고는 이렇게 변했어.”
“이제 이런 산길도 걸으시고요.”
“처음엔 저 아래 대로만 걸었지. 가다가 힘들면 기었지.”
“지금도 도시락 두 개 싸 가지고 산에 오세요?”
“지금은 도시락 하나만 싸가지고 와.
“며느님이 지금도 반찬을 손수 해서 도시락 싸 주시나요.”
“그럼. 우리 며느리 효 부지.”
“할아버지가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한 이유가 며느리를 위해서였잖아요?”
“그래. 맞아.”
“젊은 며느리가 내가 방에 누워 있으니까 아무 데도 못 가고 내 시중만 드는데 너무 불쌍하더라고. 그래서 기어서라도 산에 갈 터이니 아들 더러 차로 북한산 아래에 내려놓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어. 처음에는 안 된다고 막무가내였어. 나도 지지 않고 하도 사정을 하니까 도와주더군.”
“할머니는 요?”
“마누라 5년 전에 세상 떴지.”
“지금은 며느리도 좋아하겠어요.”
“그럼.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몇 달간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고생하는 며느리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내가 죽더라도 산에 오르다가 죽는다고 결심을 했어. 며느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하루 종일 산에서 살다 밤에 집에 갔지.”
“지금은 친구들도 만나시겠네요?”
“그럼 친척집에도 가.”
“할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에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한 편의 인간승리를 보는 것 같아요.”
“지금도 산에서 하루를 거의 보내. 공기가 참 좋잖아. 내가 집에서 나와야 며느리가 자유롭게 하루를 지낼 수가 있거든.”
“안녕히 가세요.”
“그래.”
할아버지는 5년 전 하시던 사업이 부도를 맞는다는 소식을 듣자 쓰러지셨고 그 후유증으로 몸이 거의 마비되었다. 그리고는 몇 달 간의 치료를 받은 후 간신히 약간씩 오른쪽 팔다리는 움직일 수가 있었지만 왼쪽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누라도 없는데 누가 뒷바라지해줄 사람도 없다. 오른쪽도 아주 약간씩 움직일 수가 있을 뿐이다. 사업체는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받고 은행융자를 얻어 부도 위기를 막고 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몸이 마비되자 바닥을 기고 층계를 기어 다니면서 팔다리 운동을 하였단다.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서 몇 시간을 허비하였단다. 그가 움직이는 것은 굼벵이보다 느렸다고 한다. 그래도 하루 종일 서너 발자국을 떼어 놓을 수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뭉클뭉클 솟더란다. 움직였다는 희망을 안을 수가 있어서 행복하였단다. 그래서 끝내는 산을 기다가, 오전 내내 걸려서 쌍지팡이를 집고 발을 떼어서 약수터에 닿고 다시 내려가는데 오후가 다 소비되었단다. 날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니 몸이 조금씩 자기 말을 듣기 시작하였단다. 산을 내려가시는 할아버지를 한참을 본다. 의지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林光子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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