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하는 봄
겨울 내내 먹기만 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더니 디룩디룩 오른 살을 내쫓기 위해 오늘도 텃밭에 나가 이것저것 정리를 한다.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고 조금은 힘이 주어지는 작업인데도 전혀 피로하지 않고 개운하다.
작년 여름 나에게 싱싱한 상추를 제공해 준 고무통.
이 고무통은 이제 이곳에서의 운명은 끝나고
서북쪽 연못의 바닥에 깔았던 하우스 비닐에 상처가 나서
물이 새어버리는 연못 속으로 들어가 연을 품고 살아갈
운명으로 바궈질 것이다.
바닥에 뚫린 물 빠지는 구멍은 시멘트로 떼울 것이다.
작년 여름에, 위에 유리를 올려 장마철에도 상추를 나에게 제공해 주던 550리터 넓은 고무통은 이제 연못통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다 더 따뜻해질 때까지 서북쪽 연못가 옆 터로 옮겨졌다. 그 위에 올라 장맛비와 소낙비를 피해서 상추를 보호해 주던 유리판은 겨울에 쏟아졌던 눈을 바로 바로 치워주지 않아 눈 무게에 짓눌러 깨졌다. 강화유리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거다. 이제 올해 장마철에 먹을 상추는 어디에 심을까 생각 중이다. 고무통 속의 흙은 나중에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마대에 나누어 옮겼다.
백련꽃을 계속 보려면 새는 연못 바닥의 흙을 파내고
아래 고무통을 묻고 흙을 채우고 다시
백련을 심는 거다.
처음부터 고무통을 묻고 백련을 심었으면
두 번 고생 안 하는 건데 바보!
오늘 할일을 마치고 텃밭을 둘러보니 봄이 여기저기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내가 왔다고!! 잠자는 생명을 깨우려 왔다고...이미 뿌리에서는 생명을 깨울 물을 분주하게 빨아올리고 있다고..
붉은 고무통은 빗물통이다.
빗물을 받아 텃밭에 준다.
그렇게도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봄은 그 겨울을 이기고 잠자는 식물들의 DNA를 깨워서 생명을 세상에 펼치라고 따뜻한 손길로 다가와 어루만진다.
작년 가을에 텃밭의 풀을 뽑고 뽑았더니 지금 나물거리가 하나도 없다. 올 가을에는 그냥 두어야겠다. 내가 남의 생명줄을 끊었더니 내 생명줄을 이어 줄 먹을거리가 없는 것이다. 적당히 서로 돕고 사는 건데 왜 그렇게도 씨를 말렸는지 모르겠다.
2013.02.19. 林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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