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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이야기

인연(因緣)

by 임광자 2009. 11. 22.

인연(因緣)


아침에 일어나 수돗가에 가서 물그릇을 보니 얼음이 얼었다. 문득 고창천은 얼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이정도 추위로는 흐르는 물은 얼지 않았겠지만 가장자리에 고여 있는 물은 얼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충 집안일을 끝내고 늦은 아침을 먹고 디카를 메고 고창천으로 갔다. 햇볕이 쨍쨍 내려 쪼이는 고창천은 따뜻해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응시해 보았지만 얼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쩜 햇볕이 얼음을 다 녹인 후에 내가 갔는지도 모른다. 백로가 물질을 하며 제법 큼직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일요일인 오늘도 고창천의 공사는 쉬지 않고 포클레인 몇 대가 나와서 여기저기서 작업을 하고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아주머니가 생명을 다하고 말라 바삭거리는 들국화 대를 무더기로 꺾어서는 캐리어에 달린 자루의 입구를 열고 넣고 있다. 저건 먹는 국화인데 어디에 쓰려고 말라빠진 대를 저렇게 꺾어 넣을까 궁금증이 일어서 내가 그녀의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여긴 쑥이 없네요. 그래서 이것이라도 꺾어가요.-

-그걸 가져다가 어디에 사용해요?-

-베게 속으로 넣어서 베고 자면 좋다고 그래서요. 쑥으로 해야 하는데 쑥이

없네요.-

나는 국화꽃 말린 것을 베게 속으로 사용하는 줄 알고 있다. 저렇게 말라빠진 것을 베게 속으로 넣으면 부셔져서 먼지가 나와 이목구비나 호흡기에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읍을 벗어나면 쑥 많아요,-

그렇게 말해주고 우린 헤어져서 나는 사진을 계속 찍어가면서 위로 올라가고 그녀는 그만 집으로 가겠다고했다. 다리를 건넜다가 다시 건너서는 한참을 걷다가 그녀를 다시 만났다.

-어머 또 만나네요.-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나에게

-아이들 있어요?-

-아니 없는데요.-

-저도 없어요.-

-고창에 내려와서 살고 싶어요.“

-저도 고창에 작년 봄에 내려왔는데 공기 좋고 물 좋고 아주 좋아요.-

-정말 물맛이 좋데요.-

-저는 머리도 비누로 감아요.-

-제 동생도 비누로 머리를 감데요.-

-저는 속이 안 좋아서 쑥을 좋아해요.-

-맞아요. 쑥은 아랫배를 덮게 해서 위장에 좋아요.-

이런 저런 건강 이야기 하다가

-인터넷 하시면 제 블로그에 들어와서 인체 이야기 읽어 보세요.-

내 명함을 한 장 주니 보고서는

-저도 서울서 유치원 했어요. 유아교육과를 나왔어요.-

-저도 놀이방 좀 하였는데요.-

둘은 서로가 도움이 되겠다고 말하며 금방 이야기가 팍팍 통했다. 그녀의 집이 가깝다고 해서 그녀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갔다. 거실로 들어가자 남쪽 벽이 완전히 유리창으로 되어서 거실에 햇볕이 비추어 아주 따뜻하다. 거기에는 제라리움, 선인장, 귤 몇 개를 달고 있는 귤나무 화분이 있다. 그녀는 봉지에 들어있는 청동호박과 가시오가피를 달인 물을 따서 컵에 담아 준다. 연시로 변한 장두감과 귤을 준다. 수저로 연시를 떠먹으니 참 맛있다.

-어머 귤이 열렸네요.-

-저 귤나무 제주도에서 가져다 심은 건데요. 작년에는 60개가 달렸데요.-

나도 귤나무를 화분에 심고 싶었지만 욕심이다. 우리 집은 이 집처럼 햇볕이 쨍쨍 들어오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쪽을 아주 창으로 만들걸 그랬다.


밖으로 나왔다. 텃밭 너머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긴 대나무 막대기로 단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를 꺾어주며 가져다 걸어 놓으라고 한다. 장두감도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나무들이 아주 커서 보기에 좋았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동생집은 노동 저수지 가는 길목에 있다. 앞산 옆산이 있고 골프 연습장도 있다. 가을에 산에는 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단다.

-산나물도 뜯을 수 있겠네요?-

-내가 여기 온지가 두어 달 밖에 안 되어요. 산나물 뜯으려는 가지 않았어요.-

-고창으로 꼭 내려와서 살아요. 그럼 통하는 사람끼리 여기 저기 가게요.“

-그러고 싶네요.“


둘 다 갑자기 고창천으로 가고 싶어서 왔다가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고창천 둑에서 쑥을 뜯으러 왔다가 나를 만났고 나는 고창천의 얼음을 사진 찍고 싶어서 왔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나는 생일도 음력으로 같은 달에 그녀는 11일이고 나는 13일이었다. 그래서 12일에 합동으로 둘이서 지내자고 약속을 했다. 그녀가 모자를 벗으며 파마머리가 너풀거리는 것을 쓰다듬으며

-어제 김진아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어요.-

-웬일! 나도 김진아 미용실 다니는데요. 쑥이 몸에 맞는 것도 같고 인연은 인연이다.-

-나는 토끼띠인데 무슨 띠세요?-

그녀가 묻는다.

-나는 음력으로는 말띠, 양력으로는 양띠.-

-어머. 둘 다 털이 있고 뛰기를 좋아하니 딱 어울리네요.-

-그런 거예요.-


우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생생연에 와서 내 블로그 구경을 시켜 주었다. 그녀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트북 하나 사서 블로그를 하라고 권했다. 블로그를 하면 세월 가는 줄 모른다고 하면서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구경 시키자 정말 좋다며 꼭 하겠다고 한다. 이번 달에 고창천으로 인해서 맺어진 여러 인연들 앞으로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林 光子 20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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