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봐요! 둥둥 타요!
오늘 옥수수 대를 모두 잘랐다. 열린 옥수수자루의 껍질을 까보니 아주 작았다. 그래도 그거 어디인가 거저 심어져 수확한 것인데 그냥 기분 좋다. 올해는 이웃집 할머니가 자기 밭인 줄 알고 우리 밭에 잘못심어 내 것이 된 옥수수를 수확했지만 내년엔 씨를 받았다가 제대로 심고 가꾸어야겠다. 종자를 얻으려고 한그루를 남겨 두었다.
종자 옥수수는 아주 실하게 영글게 해서 처마 밑에 높이 내년 봄까지 걸어두어야겠다.
포도가 한 송이 남았다. 포도나무는 참 잘 샀다. 아주 맛있다. 딱 한 송이 남은 것이 까맣게 익으려면 며칠 두어야겠다. 지날 때면 쳐다보며 군침만 삼킨다.
남동생은 젊을 적에 어금니에 충치가 먹어 땜질을 한 것이 늙어서 떨어졌는데 치과에서는 다시 땜질을 할 수는 없고 그대로 사용하던지 아니면 빼버리라고 한다며 아프지는 않고 너무 부드러운 음식물을 먹으면 땜질이 빠져 생긴 어금니의 웅덩이에 자주 낀다고 안 먹는 게 낫단다. 먹고 나서 낀 걸 이수시게로 빼내려면 귀찮단다. 사랑니라서 마지막에 있는 거라 빼버리고 거침없이 먹으라 하니 자주 끼는 것을 안 먹으면 되는데 뭐하려 빼느냐며 포도를 먹지 않는단다. 으이구 답답해! 그래 좋다. 앞으로 포도는 네 몫까지 다 내꺼다.
옆지기가 포도를 안 먹는 이유는 너무 시어서 싫단다. 내가 덜 익은 것을 따준 것을 먹더니 두 번 다시 먹지 않겠단다. 그런데 아주 까맣게 잘 익은 포도는 아주 달고 맛이 좋다. 그래서 몇 송이 열리지 않는 포도지만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까맣게 된 것만 골라서 따먹는 재미가 참 좋다.
어제 3그루에서 딴 꽈리고추를 이웃에 있는 떡집에 갖다 주었다. 떡집 앞 편상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하늘을 보며
-저거 봐요. 거미줄 타고 둥둥 타요.-
-둥둥 탄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거이사투리인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둥둥 탄다고 안 함디여.-
-그냥 그네 탄다고 안 하고요?-
-그네 탄다고 해요? 저건 둥둥 타는 건디. 그네에 앉지도 않고 궁중에 떠 있는디. 그래도 거미줄이 있으니까 저렇게 공중에서 대롱거리겠제.-
마침 디카를 메고 있던 참이라 가까이 가서 한방 찍고 잘 보니 그건 나무 가지 끝의 껍질이다. 얼른 보면 꼭 매미 껍질 같다.
-아주머니! 나무 가지 끝의 껍질이에요.-
-그러이. 꼭 매미껍질 같여. 공중에 떠 있는 걸 보니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가 벼.-
-그러네요. 위에 처진 거미줄 망에 걸렸다가 무거우니까 이렇게 내려왔나 봐요.-
계속 보고 있으니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떡집 아주머니가 내가 준 꽈리고추의 꼬투리를 따고 있는데 이층 할머니가 온다.
-할머니 꽈리 고추 있어요?-
-사면 있지.-
할머니는 말하고는 꽈리고추를 하나 들고는
-이걸 배를 갈라서 물로 씻으면서 씨를 싹빼고 망에 받쳐서 물기를 빼고는 팔팔긇는 물에 얼른 데쳐서 왜간장 좀 치고 물 치고 식용유 한방울 넣고 다시다 조금 넣고.. 멸치를 끓는 물에 데쳐서 망에 받쳐서 살살 문지르면 껍질이 벗겨져요. 그걸 고추 끓이는데다 넣고 함께 끓이다가 참기름 두어방울 깨소금을 넣고 달달 끓이면 맛있어요.-
하고 말한다. 나는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 간 웰빙 감치미를 조금 사용한다.
-할머니! 내가 꽈리고추 드릴가요?-
-어디서 나서?-
-이것도 제가 갖다 드린 거예요. 가요. 집에 가서 꽈리고추 따 드릴 게요.-
내가 할머니와 같이 집으로 오는데 돌로 쌓아서 화단을 만든 것을 보고는
-정말 재주도 좋아 어떻게 돌로 이렇게 예쁘게 쌓아서 만들었지.-
아직 돌로 덜 만든 곳을 가리키며
-할머니! 여기도 화단 만들어서 도라지와 더덕을 심으려고 해요. 그늘이 진 곳이라 더덕이랑 도라지가 잘 되고 도라지 꽃 피면 예쁘잖아요.-
-글매. 참말 예쁘게 만들었어.-
둘이서 꽈리고추가 심어진 주차장 쪽 군청 화단의 옹벽 위의 화분 앞으로 가서 각각 한그루씩 앞에 서서 꽈리고추를 따니 꽤 된다.
-할머니! 이거 가져다 맛있게 드세요. 이거 매운 거니까 센 것은 된장찌개에 넣어 드시고요.-
-우리 집 가서 부침개 하나 먹고 가. 내가 밀가루로 부쳐 놓았어.-
할머니가 간곡히 말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 들어가니 앞뒷문을 다 열어서 맞바람이 기가 막히게 불어서 아주 시원하다.
-할머니! 엄청 시원하네요. 우리 집보다 더 시원해요.-
-그래서 나 혼자 있을 때는 선풍기도 켜지 않아. 밤에 형광등도 키지 않아. 저기 가로등이 비쳐서 훤해서 그냥 텔레비전을 봐.-
그러며 길가의 가로등을 가리킨다. 거실의 커다란 에어컨은 그냥 손님처럼 서 있다.
-방으로 들어가면 저기 가로등이 비쳐서 또 훤해.-
말하며 주차장 쪽 길의 가로등을 가리킨다.
-여기에 햇빛이 들어오면 저 방으로 가면 또 시원혀. 나 혼자 있을 때는 전기요금 얼마 안 나와. 애들이 오면 전기를 막 쓰지.-
할머니가 내어놓은 부침개는 얇고 씹으면 쫀득쫀득해서 내가 한 것 보다 훨씬 맛있다. 역시 나이 드신 분의 요리솜씨는 다르다. 고소한 차를 한잔 타 주어서 마시고는 깜작 잊었던 것이 생각나서 일어서며
-할머니! 저 가 봐 야해요. 아저씨한테 꽈리고추 떡집에 갖다 주고 와서 매실차 한잔 주기로 하고는 제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강의실로 오니 옆지기는 기다리다 못해서 자기 방으로 갔다. 부랴부랴 매실차 원액에 물을 타서 옆지기에게 가져다주었다. 옆지기는 취해서 비몽사몽이라
-뭐여?-
-매실차요.-
그는 매실차를 보더니 그대로 누운 채로 스스로 눈을 감는다.
떡집 아주머니의
-저거 봐요? 둥둥 타요.-
하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보이지도 않은 거미줄에 매달려 바람 따라 왔다 갔다 하던 그 나뭇가지 껍질 조각이 눈에 선하다. 어쩜 지금 옆지기가 취해서 혈중 알코올 따라 정신이 비몽사몽 둥둥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생각이 든다.
방앗간 안에서 하얀 비둘기가 무언가를 쪼아 먹는다.
林 光子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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