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연 이야기

저거 봐요! 둥둥 타요!

by 임광자 2009. 8. 15.

저거 봐요! 둥둥 타요!

 

오늘 옥수수 대를 모두 잘랐다. 열린 옥수수자루의 껍질을 까보니 아주 작았다. 그래도 그거 어디인가 거저 심어져 수확한 것인데 그냥 기분 좋다. 올해는 이웃집 할머니가 자기 밭인 줄 알고 우리 밭에 잘못심어 내 것이 된 옥수수를 수확했지만 내년엔 씨를 받았다가 제대로 심고 가꾸어야겠다. 종자를 얻으려고 한그루를 남겨 두었다.

 

 

 

 

 

 

 

종자 옥수수는 아주 실하게 영글게 해서 처마 밑에 높이 내년 봄까지 걸어두어야겠다.

 

 

포도가 한 송이 남았다. 포도나무는 참 잘 샀다. 아주 맛있다. 딱 한 송이 남은 것이 까맣게 익으려면 며칠 두어야겠다. 지날 때면 쳐다보며 군침만 삼킨다.

 

 

 

남동생은 젊을 적에 어금니에 충치가 먹어 땜질을 한 것이 늙어서 떨어졌는데 치과에서는 다시 땜질을 할 수는 없고 그대로 사용하던지 아니면 빼버리라고 한다며 아프지는 않고 너무 부드러운 음식물을 먹으면 땜질이 빠져 생긴 어금니의 웅덩이에 자주 낀다고 안 먹는 게 낫단다. 먹고 나서 낀 걸 이수시게로 빼내려면 귀찮단다. 사랑니라서 마지막에 있는 거라 빼버리고 거침없이 먹으라 하니 자주 끼는 것을 안 먹으면 되는데 뭐하려 빼느냐며 포도를 먹지 않는단다. 으이구 답답해! 그래 좋다. 앞으로 포도는 네 몫까지 다 내꺼다.

옆지기가 포도를 안 먹는 이유는 너무 시어서 싫단다. 내가 덜 익은 것을 따준 것을 먹더니 두 번 다시 먹지 않겠단다. 그런데 아주 까맣게 잘 익은 포도는 아주 달고 맛이 좋다. 그래서 몇 송이 열리지 않는 포도지만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까맣게 된 것만 골라서 따먹는 재미가 참 좋다.

 

어제 3그루에서 딴 꽈리고추를 이웃에 있는 떡집에 갖다 주었다. 떡집 앞 편상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하늘을 보며

-저거 봐요. 거미줄 타고 둥둥 타요.-

 

 

 

-둥둥 탄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거이사투리인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둥둥 탄다고 안 함디여.-

-그냥 그네 탄다고 안 하고요?-

-그네 탄다고 해요? 저건 둥둥 타는 건디. 그네에 앉지도 않고 궁중에 떠 있는디. 그래도 거미줄이 있으니까 저렇게 공중에서 대롱거리겠제.-

마침 디카를 메고 있던 참이라 가까이 가서 한방 찍고 잘 보니 그건 나무 가지 끝의 껍질이다. 얼른 보면 꼭 매미 껍질 같다.

-아주머니! 나무 가지 끝의 껍질이에요.-

-그러이. 꼭 매미껍질 같여. 공중에 떠 있는 걸 보니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가 벼.-

-그러네요. 위에 처진 거미줄 망에 걸렸다가 무거우니까 이렇게 내려왔나 봐요.-

계속 보고 있으니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떡집 아주머니가 내가 준 꽈리고추의 꼬투리를 따고 있는데 이층 할머니가 온다.

-할머니 꽈리 고추 있어요?-

-사면 있지.-

할머니는 말하고는 꽈리고추를 하나 들고는

-이걸 배를 갈라서 물로 씻으면서 씨를 싹빼고 망에 받쳐서 물기를 빼고는 팔팔긇는 물에 얼른 데쳐서 왜간장 좀 치고 물 치고 식용유 한방울 넣고 다시다 조금 넣고.. 멸치를 끓는 물에 데쳐서 망에 받쳐서 살살 문지르면 껍질이 벗겨져요. 그걸 고추 끓이는데다 넣고 함께 끓이다가 참기름 두어방울 깨소금을 넣고 달달 끓이면 맛있어요.-

하고 말한다. 나는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 간 웰빙 감치미를 조금 사용한다.

-할머니! 내가 꽈리고추 드릴가요?-

-어디서 나서?-

-이것도 제가 갖다 드린 거예요. 가요. 집에 가서 꽈리고추 따 드릴 게요.-

 

 

 

 

내가 할머니와 같이 집으로 오는데 돌로 쌓아서 화단을 만든 것을 보고는

-정말 재주도 좋아 어떻게 돌로 이렇게 예쁘게 쌓아서 만들었지.-

아직 돌로 덜 만든 곳을 가리키며

-할머니! 여기도 화단 만들어서 도라지와 더덕을 심으려고 해요. 그늘이 진 곳이라 더덕이랑 도라지가 잘 되고 도라지 꽃 피면 예쁘잖아요.-

-글매. 참말 예쁘게 만들었어.-

둘이서 꽈리고추가 심어진 주차장 쪽 군청 화단의 옹벽 위의 화분 앞으로 가서 각각 한그루씩 앞에 서서 꽈리고추를 따니 꽤 된다.

-할머니! 이거 가져다 맛있게 드세요. 이거 매운 거니까 센 것은 된장찌개에 넣어 드시고요.-

-우리 집 가서 부침개 하나 먹고 가. 내가 밀가루로 부쳐 놓았어.-

할머니가 간곡히 말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 들어가니 앞뒷문을 다 열어서 맞바람이 기가 막히게 불어서 아주 시원하다.

-할머니! 엄청 시원하네요. 우리 집보다 더 시원해요.-

-그래서 나 혼자 있을 때는 선풍기도 켜지 않아. 밤에 형광등도 키지 않아. 저기 가로등이 비쳐서 훤해서 그냥 텔레비전을 봐.-

그러며 길가의 가로등을 가리킨다. 거실의 커다란 에어컨은 그냥 손님처럼 서 있다.

-방으로 들어가면 저기 가로등이 비쳐서 또 훤해.-

말하며 주차장 쪽 길의 가로등을 가리킨다.

-여기에 햇빛이 들어오면 저 방으로 가면 또 시원혀. 나 혼자 있을 때는 전기요금 얼마 안 나와. 애들이 오면 전기를 막 쓰지.-

할머니가 내어놓은 부침개는 얇고 씹으면 쫀득쫀득해서 내가 한 것 보다 훨씬 맛있다. 역시 나이 드신 분의 요리솜씨는 다르다. 고소한 차를 한잔 타 주어서 마시고는 깜작 잊었던 것이 생각나서 일어서며

-할머니! 저 가 봐 야해요. 아저씨한테 꽈리고추 떡집에 갖다 주고 와서 매실차 한잔 주기로 하고는 제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강의실로 오니 옆지기는 기다리다 못해서 자기 방으로 갔다. 부랴부랴 매실차 원액에 물을 타서 옆지기에게 가져다주었다. 옆지기는 취해서 비몽사몽이라

-뭐여?-

-매실차요.-

그는 매실차를 보더니 그대로 누운 채로 스스로 눈을 감는다.

 

떡집 아주머니의

-저거 봐요? 둥둥 타요.-

하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보이지도 않은 거미줄에 매달려 바람 따라 왔다 갔다 하던 그 나뭇가지 껍질 조각이 눈에 선하다. 어쩜 지금 옆지기가 취해서 혈중 알코올 따라 정신이 비몽사몽 둥둥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생각이 든다.

 

방앗간 안에서 하얀 비둘기가 무언가를 쪼아 먹는다.

 

 

 

 

 

 

 

林 光子 2009.08.15.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