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은 운이 좋았을까 아님 머리가 좋았을까
어느쪽이었을까?
멘델이 유전물질 즉 유전자란 개념을 증명한 멘델의
법칙이 가능 하였던 것은 바로
완두 콩은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하고 대립형질이 뚜렷했기에 그런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
자가수분이란 한 꽃 속에 암술과 수술이 있어 끼리
끼리 수분(꽃가루받이) 하는 것을 말한다. 대립형질이란 대립되는 형질을 말한다. 예를 들면 씨가 둥근 것과 주름진
것은 대립되는 형질이다.
멘델이 완두콩 실험을 열심히 하였던 시기는 진화론의
대두로 사회가 약간은 혼란한 시기였다. 창조론을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진화론이 대두되어 혼란을 주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 하였으면서도 유전자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어떻게 진화되는가를 증명하지는 못했다.
멘델은 자가수분을 하고 대립형질이 뚜렷한 완두콩을
선택하였기에 영원히 빛나는 멘델의 법칙을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멘델이 “언젠가는 내
세상이 올 것이다”라는 말은 그가 죽은 후 16년 후에, 즉 멘델의 법칙을 발표한지 35년 후에 그의 업적은 인정 받게 된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때가 아직 덜 되어서 세상이 그를 알아 주지 못했을 뿐이다. 위인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가.......
네덜란드에 살고 있던 드 프리스라는 사람은 “달맞이 꽃의 돌연변이”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 문헌조사에 들어갔다. 도서관에 있던 책에서 유전에 관한
논문을 찾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미 35년 전에 멘델이란 사람이 재료만 달랐지 자기와 똑 같은 논문을 발표한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하게 놀랐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위대한 논문이 도서관에서 사장되고
말았다니.....
드.프리스는
1900년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논문에 멘델의 논문을 첨부하면서 이미 자기와 똑 같은 연구가 35년 전에 발표 되었음을 알렸다.
드.프리스의 논문을 본
독일의 코렌스가 자기도 ”완두콩과 옥수수의 실험”을 하고 자신의 논문을 쓰기 위해서 문헌조사를 하다가 수 십년 전에 이미 멘델이 똑 같은 연구
논물을 발표 하였음을 알고 더 이상의 연구를 하지 않고 논문 발표를 포기하였다는 편지를 드 프리스에게 보냈다.
오스트리아의 첼마크는 혼자서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가
드.프리스의 발표를 보고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멘델의 논문에 덧붙여 발표를
했다.
갑자기 생물학계가 술렁거렸다. 같은 시기에 똑 같은 내용을 세 명의 과학자가 발표를 하였는데 하나 같이 이미 35년 전에 멘델이 발표한 결과와 같다는
내용이다.
그리하야 멘델은 세상 사람들 사이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고 멘델의 법칙이 바로 그의 위대한 업적으로 재인식되고 유전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유전자를 인식 시키고 그의
통계처리에 의한 비율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맞다.
林光子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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