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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설날 추억

by 임광자 2015. 2. 18.

설날 추억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을 새신 아버지는

정갈한 의장을 갖추시고

자정이 되면

우물가로 가셔서

큰 놋양푼에 물을 길어 오셔서


닭이 울면

우리들을 깨우고

자정에 떠온 물을

먹이셨지.


아버지가 주신 물을 마시고

우물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설빔 옷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활짝 열고

아랫목에 앉아계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한 사람씩

마루로 가서

세배를 큰 절로 두 번 드렸지.

아버지께 한번, 어머니께 한번.


설상을 차려서

가운데 놓고

우리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쥐고

아버지는 기도를 하셨고

우린 기도소리 보다도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을

참느라 힘들었어.


아버지 7형제 중

아버지만 읍에서 살고

다른 분들은 신림면, 반용리에

모여 살아서

아니 할아버지 형제들도

한 동네 살아서

수십 명이 넘는 사촌과 육촌들이

남자들 따로

여자들 따로

한길을 휩쓸며

아버지께 세배하려

고창읍으로 오고


우리들은 

사촌들이 모여 사는

시골로 가서

일가친척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결혼을 하여

친가와 외가 친척 집들이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집집을 순방하는

그런 세배 길

앉았다 일어났다

일어났다 앉았다.



홀로 사시는 어른들께 갈 때는

사촌언니들이 작은 상을 차려

들고 가면

나는 식혜가 든 주전자를 들고

졸졸 따라 다녔지요.


홀로 계시는 어른들 방안에는

세배꾼들이 가져 온 작은 상들이

윗목에 가지런히 있었어요.


혼자 계셔도 설날엔 외롭지 않고

먹을거리가 풍족하였지요.

그 당시에는 세뱃돈이라는 것이 없고

그저 어른들께서 덕담을 해 주셨어요.


아하! 그 때가 그리워요.


그 많은 사촌들

모두 도시로 떠나거나

저승으로 가고


지금은 늙으신

사촌 오빠와 동생 몇이

동네를 지키는데

명절 때는 자손이 내려오는 집도 있고

어른들이 자손 집으로 올라가는 집도 있어

명절이 와도 동네가 쓸쓸.

벌써 빈집들도 있고

이제는 그 옛날의 영광(?)은

다시 오지 않으리.



林光子 20080207

 

★내일이 설날 옛날이 생각나 옛날에 올렸던 글 다시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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