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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40년 만에 밝혀진 진실

by 임광자 2011. 3. 12.

40년 만에 밝혀진 진실


1970년대, 40년도 더 지난 청춘 시절에 토플을 공부한다고 종로 학원가를 누볐던 시절에 사귄 친구들이 있다. 그들 중에서 조금 더 친했던 한 친구 소식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인터넷 통합검색에 그의 이름을 넣고 검색했다.

“전 교수”라고 나온다.

뭐야 아직 정년퇴직할 나이가 아닌데...이상타! 그는 195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만 65세가 안 되었다. 명예퇴직인가? 다시 통합검색에 그의 이름을 넣고 검색하자 그가 지은 책 이름이 나온다. 책 이름이 그가 전공했던 분야다. 책 이름을 따라 계속 파고 들어가니 그의 약력이 쭈~욱 나온다. 서술 식으로 쓰인 약력의 처음에 등장하는 것은 한남동대학졸업으로 나온다. 이건 또 뭐야? 그 당시 그는 신촌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며 한남동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한다고 말하고 다녔고 우리들은 그 말을 믿고 있었다. 한남동대학에서 학사를, 미국 대학원에서 석사를, 영국에서 박사를 하였다고 나온다. 미국에서 석사를 받은 대학 이름이 그가 미국으로 유학 갈 때의 대학 이름이다. 머리를 한데 맞은 기분이다.


그가 근무했던 대학에 들어가서 교수를 검색하니 작년 여름에 퇴직한 명예교수 명단에 있다. 나온 사진을 보니 틀림없는 그다. 40년 지나서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옛날에 그가 한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구나...왜 거짓말을 하였을까? 유학 갈 돈을 만들기 위해서였을까? 그가 유학가기 전에 만났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가정교사를 하는 집에 대한 불평이었다.

-기가 막혀 잘 살면서 몇 년을 가르쳐 주고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다는데 아주 짜게스리 송별금을 조금 주더라고...

-얼마를 주었는데요?

-액수는 말 할 수 없고 그 정도 살면 그래도 넉넉히 주어야지.

며칠 후에 또 전화가 와서 만났는데

-그 여자 말이야. 잘 산다면서 조금 밖에 주지 않더군.

그는 인맥이 넓었다. 유학을 가기 전에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을 다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는 그에게 준 이별금으로 상대를 평가하였다.

그리고는 떠나기 하루 전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오겠단다.

차와 과일을 대접하고는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시간이 가도 내가 돈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자. 그는 그냥 떠났다. 나도 조금은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 전에 그에게 이별금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서 그게 싫었다. 내가 그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목돈을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유학 갔던 3년 후에 직장으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 ㅅ 이요.

-네. 어디에요?

-나 학위하고 ㄷ 대학에 전임으로 들어 왔소.

-그래요. 축하해요.

-언제 만날 수 있어요?

-그래요.

나는 얼마 후에 그에게 줄 선물을 들고 그가 말한 교수실로 갔다.

아주 좁은 방에 그는 회전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앉아 있었다.

그는 조금은 징글맞은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나 결혼 했어요.

-그래요.

우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그가 시골 분교로 간 후에는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는 잊고 살았다.


그는 어려서 너무나 간난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육이오 후에 불구인 그의 어머니는 홀아비를 만나 함께 살았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아버지가 겨우 겨우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하여서 초등학교에 들어 갈 때까지 팬티를 입을 수가 없고 이복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입던 옷을 물러 받아 입었다. 실제로 육이오 후에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 아버지가 밥벌이를 하라고 학교에 못 다니게 하였지만 형은 그에게 둘 중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며 공부 하라고 하였다. 어렸지만 그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죽어라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가장 큰 상을 받는 그를 형이 졸업식장에 와서 봐 주고 축하해 주었다. 늘 형을 고마웠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입학금도 없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입학금을 내 주었다. 마침 친한 부잣집 친구가 공부를 못해서 도와주고 있었는데 친구 아버지가 자기 집에 들어와서 친구의 공부를 도와주면 공부를 시켜 주겠다고 해서 중학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비와 먹을 것 걱정 없이 공부 할 수 있었다. 친구와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시험을 봐서 그는 붙고 그 친구는 떨어졌다. 친구는 지방대학에서도 떨어졌다. 친구 아버지가 그의 입학금을 내주었다. 그 외 잡비는 이웃들이 모아서 도와주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하루에 3시간 이상 자지 않고 공부를 하여 장학금을 받고 가정교사로 학자금을 벌었다.


그가 서울로 온 후에 아버지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형은 결혼하여 부부가 맞벌이로 조카들을 가르쳤고 그는 자기가 버는 학자금의 일부를 떼어서 조카들 학비에 보태라고 형에게 보내주었다. 세상 천지에 혈육이라고는 형과 조카들만 있었다. 어머니는 팔이 굽어서 쓸 수가 없고 아버지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였지만 그는 공부만 죽어라 파서 성공을 하였다.


그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랫도리는 항상 내놓고 다녔다. 학교에 들어가니 겉옷을 입혀 주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삼배 팬티를 얻어 입을 수가 있었다. 여름이라 시원하기도 하고 자랑하고 싶어서 그거 하나만 입고 밖에 나가 놀면 시원하기는 한데 어떻게나 빳빳한지 아랫도리가 헐어서 쓰라린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도 잊어지지 않았다.


그가 말해준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정말 그게 진실일까 궁금해진다. 그가 학력을 속인 것처럼 어쩜 그의 과거사도 다 꾸며진 것은 아닐까? 아님 그렇게라도 해야 가정교사 자리도 쉽게 얻고 때때로 지인들이 그에게 학비에 보태라고 주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학사를 받은 대학도 속이고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귀국해서는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학력을 보면 미국에서는 석사만 받고 귀국했고 다시 영국으로 가서 박사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인터넷에 나온 그의 학력을 읽으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이제 나는 마음속의 옛친구를 잃었다.


2011.03.12.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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