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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텃세

by 임광자 2011. 2. 10.

텃세


오늘도 음식 쓰레기통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웃들은 할머니 집 대문 앞에 커다란 음식쓰레기 통을 놓고 넘치도록 음식쓰레기를 버리면서 싸가지고 왔던 비닐봉지를 옆에 버려서 쌓이고 쌓여서 동그랗게 덩치를 이루면 그 위에는 각종 쓰레기를 버린다. 버린 쓰레기에는 재활용품도 있다. 비닐봉지 일부는 옆에 있는 작은 연못위로 날아가 물위에 날개를 펴고 앉는다. 그럼 건져 놓는다.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룬다.

 

★옆에 쌓인 눈 밑에도 쓰레기 더미다. 설 뒤라 그런다고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나 평상시에도 이렇게 넘친다. 이 음식 쓰레기 냄새가 집안까지 온다. 다른 집 앞은 아주 깨끗하다.  시장통이고 근처에 여인숙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온 이웃 아주머니에게

-왜 여기에 음식 쓰레기통을 놓아요? 나는 음식쓰레기 거름으로 사용해요. 반찬은 물에 담갔다가 물만 버리고 건더기는 텃밭 한쪽에 묻어요. -

-원래부터 여기에 음식쓰레기 통 있었어요.-

-뭘 그래요. 내가 이사 오니까 음식쓰레기통 치워주워야겠다고 아주머니 한분이 말하던데 그냥 그대로에요. -

-댁한테 뭐라고도 못하겠네. 이렇게 많은 음식쓰레기를 갖다 버리니까.-

-다음에 새 통을 다시 사서 자물통을 잠기어야겠네.-

-열쇠를 잠가요?  음식쓰레기고 그냥 쓰레기를 가지고와서 통에 넣지 않고 옆에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음식쓰레기통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앞에 갖다 놓으면 안 되나요?-

-.........-

-이집도 바로 저 집도 창문도 없이 그냥 벽이잖아요. 그 앞에 놓으면 안 되어요? 아주머니 집 앞에 이렇게 냄새 나는 음식쓰레기통 있으면 좋겠어요?-

-싫지.-

-나는 음식 쓰레기를 거름으로 사용하고 버리지도 않은데 이렇게 앞에 놓고 오며가며 냄새 맡게 해요. -

이렇게 말을 하자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다른 데로 간다. 그 다음부터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음식쓰레기는 잘도 갖다 버린다.


대문 옆에는 모두 주택이라 나무 한그루가 없다. 그래서 꽃도 심고 손바닥만 한 연못도 만들어 백련도 심었다. 그러면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다 함께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착각을 했다. 감상 한다는 것 보다 빈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몰래 쓰레기를 유료봉투도 사용하지 않고 갔다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유료쓰레기 봉투를 사서 치웠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쓰레기를 버렸다.

안 되겠다 싶어서 범인을 잡기로 하고 망을 보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할머니에게

-왜 여기에 쓰레기 버려요?-

-거기다 버리면 다 치우던데.-

-유료 봉투에 넣어서 버리세요.?-

-다 치워가던데 그러네.-

다른 아주머니가 음식쓰레기를 통에 넣고는 싸가지고 왔던 비닐봉지를 옆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

-가지고 가세요.-

-여기 버리면 치우지 않아요.-

-누가요?-

-여기 버리면 없어지던데.-

-내가 유료봉투 사서 치웠어요.-

-그럼 앞으로도 아주머니가 치우면 되겠네요.-

-나는 음식쓰레기 거름으로 사용해요. 이 통에 넣지 않아요. 그런데 왜 여기에 이 통을 놓고 사용들 해요?-

-거기에 음식쓰레기 통이 있으니까 거기에 넣지요. 별걸 다 가지고 그러네.-

내말을 들은 그 아주머니는 아주 불쾌한 얼굴로 떠났다. 자기가 버린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유료봉투사서 냄새나는 쓰레기를 넣어 버렸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할 텐데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아름답게 가꾸려한들 주변에서 텃세만 부리며 쓰레기장으로 만드는데 애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다. 연못을 남쪽 텃밭으로 옮길 거다. 연못가의 돌들을 돌담 쌓는데 사용하려고 오늘 옮겼다. 그냥 흙을 부어 밭을 만들 생각이다. 이런 결정을 하고나니 씁쓸해진다.


금년에 칠순인 할머니는 20대 청춘시절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1960년대 중반에 서울로 가면서 고향을 떠났다가 몇 년 전 70을 눈앞에 두고 남동생에게서 고향집을 사서 귀향했다.


타향살이에 삭막했던 마음을 고향은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줄 알았다. 돌아온 고향은 시장통이어서 다른 곳 보다 인구이동이 많다. 옛날의 이웃들이 있을까 하고 알아보니 세상을 뜨거나 이사를 갔다. 사람만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이웃의 정도 없어졌다. 도시에서는 타지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텃세가 심하지 않았지만 고향은 텃세가 심하다. 내가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면 그냥 대꾸는 해 주어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자기들끼리만 하고 나에게는 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것이 텃세라는 거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가 이제 다시 돌아왔고 이웃들은 적어도 이십여 년을 한 골목에서 동고동락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잘 통했고 나는 아직은 통하지 않는 조금은 껄끄러운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천주교나 개신교 신도들로 뭉쳐있으니 신앙인이고 나는 신앙인이 아닌 거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이다. 더군다나 나는 일생을 책만 보고 살았는데 그들은 고된 일을 하고 살았다. 그 차이가 또한 벽이 되리라.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귀향을 꿈꾼다. 그러나 귀향을 해서 많은 벽에 부딪칠 것이다. 고향의 텃세가 더욱 외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밭이 즐비한 고향으로 간다면 아직은 옛날의 일가친척과 이웃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을 때 그래도 조금은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서로가 같은 골목에서 눈길을 마주치고 살다보면 서로가 정이 들어 동화되어 텃세의 벽도 허물어질 것이다. 그 날이 언제쯤 올까? 기다려진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서로가 속내 이야기 도란도란 하면서 흉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날이 꼭 돌아 올 것이다.

 

 


2011.02.10.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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