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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어느 노부부의 설맞이

by 임광자 2011. 2. 3.

어느 노부부의 설맞이


가난하고 자식도 없는 노부부는 명절이 돌아오면 서글프다. 명절이 돌아와도 찾아올 사람도 없고 찾아가 만날 사람도 특별하게 없다. 근근이 먹고 살기에 다른 사람 대소사에 생활비의 일부를 싹둑 잘라먹는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갈 수도 없어 그냥 빠지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오고가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집 하나는 붉은 단층 벽돌집에 텃밭이 넓어서 근사하다.


설 명절이라고 앞집, 옆집, 뒷집에서는 도시에 나가있던 자손들이 와서 시끌벅적 웃음소리 요란하다. 시무룩하게 텔레비전만 보고 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집안의 전깃불을 다 켜서 대낮같이 밝힌다.

-전기세 많이 나오는데 왜 사방에 쓸데없이 불은 키고 그려. -

할아버지가 할머니 들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약 올라서 그려. 사방의 집들이 불을 밝히고 기름 냄새 풍기며 음식 장만에 정신없잖아.-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할아버지가

-우리도 떡 해먹자!-

-둘이서 얼마나 먹는다고 쌀을 방앗간에서 빻아오고 떡을 해요.-

할머니의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텔레비전 앞에 않는다.

할아버지가 부엌으로 나가서는 무언가를 한다. 한참 후에 안방으로 와서는

-이거 먹으라고는 안 해 그냥 맛만 봐!-

하고는 하얀 접시에 두텁게 붙여진 부침개 같은 것을 할머니 앞에 놓고 부엌으로 얼른 간다.

할머니가 맛을 보니 이건 쌀떡 과자다. 고소하고 바삭바삭하다. 당장 부엌으로 가니 기름 냄새가 참 좋다. 할아버지 옆에 선다.

-어때 맛이?-

-무얼로 만들었기에 그렇게 맛있어요?-

-잡곡을 분쇄기에 빻아서 계란 풀어 넣고 땅콩과 호박씨를 넣고 걸쭉하게 반죽을 해서 약한 불에 프라이팬 올려서 식용유 두르고 아주 천천히 익게 하였더니 이렇게 맛있어.-

-가장자리는 꼭 과자 같아요.-

-약한 불에서 오래 익히면 더 바삭하게 되지.-

-우리 앞으로 자주 해 먹어요. 그런데 이렇게 만드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텔레비전에서 이런 걸 부칠 때는 약한 온도에서 서서히 익히면 타지 않고 맛있게 된다고 하드라고 그리고 쌀가루로 부침개를 하면 밀가루 보다 더 맛있다고 하드라고. 재료는 우리가 먹는 쌀통에 있는 잡곡을 그대로 분쇄기에 넣고 찧은 거야.-

-씻지도 않고요?-

-씻으면 분쇄기에서 잘 안 빻아져. 우리가 농사지은 것인데 그냥 먹어도 깨끗하지.-

-아하! 다음에는 찹쌀을 섞어요. 그럼 식어도 부드러워요.-

-그러네. 지금은 이렇게 따뜻하니 부드럽지만 식으면 단단해지지.-

-재료를 바꾸어가면서 만들어 먹어요.-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때웠네.-

-내일은 설이니까 만두 떡국 만들어 먹고 동태 부침개도 해야지요.-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하루에 한가지씩만 해요.-

-한 가지를 만들더라도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드니까 여러 가지를 먹는 것과 같아요.-

-그래야 살도 덜 찌고 영양소도 골고루 섭취 할 수 있지.-


노부부는 노인정에 가지 않는다. 노인정에 가면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자랑에, 자손들이 용돈 준 자랑들을 입이 닿도록 한다. 둘은 그들 속에 끼면 그냥 듣다가 온다. 기분도 별로다. 둘은 자랑 할 게 없어서다. 둘은 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재미로 산다. 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에서는 나물거리가 자란다. 온실도 조그맣게 있지만 그냥 자연 상태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자라는 먹을거리가 있다. 설 지나면 지천으로 봄나물이 텃밭에서 나온다. 봄나물 캐 먹다가 농사를 짓는다. 둘이서 일 년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잡곡과 채소를 심고 과일나무가 많다. 둘은 텃밭을 걷는 것이 바로 산책이다. 외롭게 사는 이웃들에게는 먹을거리를 조금씩 가져다준다.



2011.02.03.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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