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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007작전- 3. 빗속의 자유

by 임광자 2010. 8. 10.

007작전- 3. 빗속의 자유


 

여인숙과 우리집은 한집을 두고 떨어져 있다. 다만 여인숙과 우리집이 다 같이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다. 고창 상설시장 주차장은 아주 넓다. 그래서 여인숙 여인은 시장 주차장을 통해서 우리 집 쪽으로 와서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비가 온다. 설마한들 비를 맞으며 욕설을 퍼붓지 않겠지. 바로 나에게는 기회다. 파란 우비를 입고 여인숙 출입문에서 보이지 않도록 앉은 자세로 뒤 텃밭으로 나가서 무성히 자란 풀을 뽑고 두 그루 남은 대학생 찰옥수수를 따고 옥수수 대를 자르고 얽혀있는 오이넝쿨을 울타리에 올렸다. 지난 3일에 사건이 터졌으니 딱 일주일 만에 텃밭에 나왔다.


그 동안 흑장미가 피었다가 사그라지고 아직은 키가 작아서 옆에서 자라는 땅콩 식물에 가려진채로 노란 장미가 활짝 피어 방긋 웃는다. 피었던 백장미가 모두 사그라지고 뒷모습이 영 볼품이 없다. 가장 큰 빨강 장미는 꽃봉오리도 많고 핀것도 많다. 전지가위로 사그라진 백장미와 흑장미 목을 자라준다. 잘린 목이 뿌리 쪽에 떨어진다. 다시 썩어서 자신을 먹여 살린 뿌리 속으로 들어가 영양소가 되어 새로운 장미로 환생할 것이다.


방울토마토 밭으로 눈을 돌리니 빨강 꽃이 핀 것처럼 나무가 붉다. 참 많이도 붉었다. 고개를 들고 높이달린 빨강방울 토마토를 따서 정신없이 바구니에 담는데 빗방울이 눈으로 들어간다. 눈만 껌벅껌벅 하면서 길쭉한 방울토마토를 다 따고는 둥근 방울토마토를 따기 시작한다. 방울토마토 맛은 둥근 것 보다 길쭉한 것이 더 맛있다. 딴 방울토마토를 세 개의 그릇에 똑 같이 분배한다. 푸짐하게 많다.


오이맛고추에게로 가서 길쭉하고 짙은 녹색인 것을 몇 개 땄다. 이 고추는 맵지도 않고 아삭아삭한 맛이 참 좋다. 된장에 찍어먹을 거다.


가지 밭으로 가니 가지가 주렁주렁 이다. 7개를 땄다. 호박 밭을 긴 막대기로 이리저리 휘저으니 둥근 애호박이 있다. 그걸 땄다.


비닐 덮개를 씌운 상추 밭에 가서 덮개를 열고 보니 상추 잎이 푸릇푸릇하다. 큰 상추 옆에 뿌린 씨앗이 싹터서 벌써 두 잎이 나와 자라고 있다.


복수박이 달려서 자라고 있고 참외는 넝쿨은 비를 너무 맞아 시들고 참외가 크고 작은 것이 아홉 개가 노래지고 있다.


포도가 검게 익어가고 있다. 가족 중에서 신 것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몇 송이씩 따서 믹셔에 갈아 포도쥬스를 만들어 먹을 거다.


비를 철철 맞아서 우비에서 물이 주르르 빗줄기 되어 내린다. 그래도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니 너무 기분 좋다.


어스름한저녁 때가 되어 약국으로 머리 염색약을 사러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지 안에 전등이 켜진 채로 문이 잠겼다.


모양성 앞으로 갔다. 공사는 거의 다 끝나가나 보다. 생태공원으로 만든다던 곳에는 잔디가 깔렸다. 모양성 제를 이곳에서 하려나 보다.


다시 약국으로 오는데 닫힌 문이 열린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염색약 값을 주고 문으로 나오려는데

-이것 가져가야지요?-

약사님이 큰 소리로 부른다. 그 때서야 돈만 내고 염색약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겉으로는 말짱한 척 해도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잠간 고창천을 거닐었다. 세찬 황토물이 유유히 흐른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고비 고비 인생사도 세월과 함께 흘러가기에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8월 3일 이후부터 어두워져도 강의실 전등을 켤 수 없었는데 비오는 오늘 밤은 전등을 환하게 밝혔다. 밝으니 이렇게 좋은 것을 그 동안 어둠 속에서 살았다. 강의실 남쪽 창이 주차장으로 나 있어서 여인숙 여인이 주차장에 나오면 강의실이 환하게 밝은 것을 보면 또 욕설을 할까 보아서다.

 

비가 와서 나는 자유를 찾았고 여인숙 여자는 오늘 한 번도 우리집 쪽으로 와서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다. 오랜만에 맞은 불안한 평화로운 날이었다.

 

어젯밤 나는 어머니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엄니가 살아생전 나에게 말했던 말을 기억한다면 여인숙 여자를 어떻게 해 달라고. 마음을 너그럽게 풀어서 욕설 좀 퍼붓지 않게해 달라고. 엄니는 나에게 -고향집에 와서 새집 짓고 살면 동생들이 찾아와 함께 있는 것을 엄니의 영혼이 집에 들려 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엄니의 그 말은 유언이 되었다. 어머니는 이 집터에서 60여년을 살았다.

 


2010.08.10.  林 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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