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에 저승으로 가신 큰어머니.
그제 99세이신 큰어머님이 운명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귀와 눈이 약간 불편하셨지만 정신이 초롱초롱 하셨던 큰 어머니시다. 다섯 아들 중 셋이 서울에서 살았다. 국립의료원에 입원해계시다가 가셔서 영결식을 서울서 하고 어제 늦게 고창 신림면의 선산에 이승과 저승이 통하는 집을 갖으셨다. 할아버지는 아들일곱에 딸 하나를 두셨다. 아버지만 관직에 계셔서 고창읍에 사셨고 모두 신림면에 사셨다.
궁평 마을 앞.
내가 절전 심야 전기 보일러 작동을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 집 남정네들 그게 복잡해서 할 줄 모른다고 야단법석이어서 어젯밤에 가지 못하고 오늘 아침에 남동생과 함께 가기로 했다. 몸이 불편한 남동생이 택시를 불렀다. 택시속에서 풍광이 뛰어 난 신림저수지 사진을 찍기가 그래서 그냥 눈 속에 넣기만 하고 사촌들이 사는 궁평마을로 갔다.
오는 길에 사촌이 운영하는 관광 버스 속에서 본 신림 저수지.
저수지 바닥은 드넓은 논이 있었고 마을도 있었고 가운데를 가로질러 궁평, 청송, 싱기, 장올, 갓바탕으로 가는 소달구지가 다니는 제법 큰 길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설날이면 큰집에 세배하려 가기위해서 다녔던 길이다. 길가에는 옹달샘이 있었다. 겨울엔 김이 모락모락 나던 따뜻한 물이 솟아오르는 바가지 샘이었다. 여중을 다니다가 병마로 세상을 떠난 언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길이었다. 그 때는 논에 황새가 참 많았었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어릴적 추억에 잠기다보니 벌써 “궁평” 이란 돌 표지석 앞을 지나고 있다. 궁평 마을 앞에는 할아버지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수십 년 세월에 마을 앞길이 넓어지고 공동 우물터가 없어지고 정자가 세워지고 마을회관이 들어섰다. 택시를 내리고 보니 어릴 적에 보았던 집들이 보인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면 자주 다녔던 남동생이 먼저 상가 집으로 앞서 간다. 사촌 오빠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한다. 방으로 들어가니 사촌들이 반갑다고 악수를 청한다.
호상이라서 아들과 손자는 약간 어둔 얼굴이지만 딸은 너무 많이 울어서 얼굴이 통통 부어서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99세, 몇 달만 더 살 으셨으면 100세를 채우고 가셨을 텐데도 딸은 못내 슬프고 슬픈가 보다. 지난 추석 때 내려오셔서 5일을 지내셨을 때 큰어머님은 말씀 하시기를 “다 갔는데 왜 나만 이렇게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셨다고 한다.
99세에 저승으로 가신 큰어머니.
큰 어머님 사진을 보니 옛일이 생각난다. 젊어서부터 소식을 하시고 부지런하시고 말이 적으셨다. 깔끔하고 단정하셨던 큰 어머님은 장날이면 농사지으신 것을 조금씩 가지고 읍내에 있는 우리 집에 오셔서 주셨다. 집이 시장 통이라서 장에 오시는 친척들이 집에 들르시곤 하였다.
지금은 궁평마을에 늙은 친척들만 열분 정도 계신다. 세월이 가면 모두 가고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마을이 되리라~~. 갑자기 쓸쓸한 생각이 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골 마을에도 젊은 사람들이 들어 와 살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마을회관에서 어제 못 온 손님을 받는다며 고창 시장에 찬거리 등을 사러 차가 온다기에 그냥 타고 왔다.
이 글을 쓰고나니 갑자기 슬픔이 몰려 온다. 누구나 언젠가는 다 가는 길이고 큰어머니는 천수를 누리고 가셨는데도 지나온 세월 속에 얽힌 추억이 세록세록 솟아 올라 슬픔을 앞세운다.
참 편안했다. 고마워!
林 光子 200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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